NAVER

질문 전라도 신안에대해서 질문합니다
비공개 조회수 7,835 작성일2014.04.14
신안은 김대중의 고향 아닌가요?

근데 신안에서 섬노예 사건이 터졌다는거는

혹시 김대중도 섬노예를....???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2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비공개 답변
지존

 

섬노예 안 해요 

2014.04.14.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염전노예가 수만명이 된다는 등 발광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경찰청은 전국 염전과 양식장, 장애인시설 등을 대상으로 일제 수색을 벌여 실종자와 임금체불자 등 전국적으로 370명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노동착취 악덕업주들도 참으로 더러운 인간들이지만
이번 사건을 지역감정 조장, 특정지역 비하로 연결시키려는 지역감정 정신병자들 역시 참으로 더러운 인간들로, 모두 이 땅에서 척결해야 합니다.

노동착취 악덕업주들과, 우리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지역감정 정신병자들은 능지처참 부관참시해야 합니다.

 

만만치 않게 일어나는 게 노동착취 사건입니다. 단순히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다른 지역을 깎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게 아니라, 정부에서 우리 주위에 노동착취 현장이 얼마나 있는지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1. 24회(2006-05-02) : 50년 노예 할아버지, 경기도 화성

화성시장 ‘노예 할아버지’ 사과문, 네티즌 분노는 여전

 

2. 67회(2007-04-03) : 30년 노예모자, 합천

‘긴급출동’ 노예모자 방송 후 합천군 홈피 불만 폭주

 

3. 126회(2008-06-10) : 식당 종살이 30년, 천안

‘긴급출동’ 식당 종살이 30년 충격, 장애노예 현장고발

 

기사 내용에서 지역이 확인되지 않아 댓글에서 확인함.


 

 

4. 143회(2008-10-28) : 10여년 노예청년, 경남

노예청년 삶 방치한 공무원에 시청자 분통

 

기사 내용에서 지역이 확인되지 않아 댓글에서 확인함.



 

 

4. 115회(2008-03-18) : 쓰레기 먹이는 장애인 수용시설, 마산

링크 : 파렴치한 장애인시설 충격실태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수가...” 


5.  150회(2008-12-16) : 40년 목장 노예 할아버지, 창원

'긴급출동 SOS 24' 방영 이후 환경수도 창원시 이미지 '실추'

 

6. 151회(2008-12-23): 20년 하우스 노예 할아버지, 대구

'세상에...' 20년 노예 할아버지 사연 분노

 

기사 내용에서 지역이 확인되지 않아 댓글에서 확인함.

 


 

 

 

7. 156회(2009-02-10) : 30년 노예 할아버지, 안동

'찬밥 먹는 노예 할아버지' 안동시청 항의 빗발

 

8. 166회(2009-05-05) : 25년 노예 할아버지, 청주

노예 할아버지, 법원 "증거 없다" 집주인은 무죄?



 

 

신안군:

조선 시대에는 나주목 · 진도현 · 무안현 · 압해현 지역이었고, 1910년 목포부로 개칭하였다가 1914년 무안군에 속하였다. 1969년에 무안군의 도서부(島嶼部) 일대를 분리하여 신안군을 만들었다. 전라남도 자료에서는 '신안(新安)' 지명에 대해 무안(務安)군에서 생겨난 새로운 군이라는 뜻으로 유래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동쪽은 바다 건너 무안군과 목포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다도해, 북쪽은 영광군의 낙월군도(洛月群島)와 접한다.

유인도 111개, 무인도 719개 등 830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수가 국내 전체 섬의 약 25%를 차지한다. 섬들이 황해에 넓게 흩어져 있어 해역이 넓다. 각 섬에는 구릉성 산지가 많고 평지의 발달은 미약하나 연안의 개펄을 간척한 평지는 넓다.

큰 섬으로는 안좌도(安佐島:45.2㎢), 압해도(押海島:44.3㎢), 비금도(飛禽島:43.1㎢), 도초도(都草島:40.3㎢), 임자도(荏子島:43.2㎢), 암태도(岩泰島:38.7㎢), 증도(曾島:37.2㎢), 장산도(長山島:24.3㎢), 하의도(荷衣島:16.1㎢), 흑산도(黑山島:19.7㎢) 등이 있다. 신안군이 있는 해역은 전부 대륙붕(大陸棚) 지대로서 수심은 15m 이내의 얕은 바다이다.

기후는 한국의 남서해상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해양성기후가 나타나며, 1월 평균기온 2∼4℃, 8월 평균기온 24℃, 연평균기온 14℃이고, 연강수량은 800∼1,000mm이다. 황해안을 남쪽으로 내려가는 연안수(沿岸水)의 차가운 바닷물과 황해 중앙부를 북상하는 황해난류가 만나는 지역으로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선박의 항해에 지장을 준다.

 

 

도시브랜드/bi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양도시 신안군의 지리적 특성을 아라비아 숫자 1004를 발전적인 그래픽 모티브로 형상화하고 1004개의 섬을 하나로 연결, 그 속의 다양한 문화와 청정환경을 심플하게 단색으로 표현
 

마스코트

군 마스코트(홍도리) :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흑산도 「홍어」를 형상화 한 것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의인화 하였고 이름은 홍어와 관광지 홍도를 연상할 수 있도록 「홍도리」로 하여 「선진수산, 관광산업」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함
 

슬로건

다도해의 섬과 Angel을 동시 표현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섬(1004)을 보유한 신안과 소탈하고 때묻지 않는 신안인의 성품을 천사(Angel)로 명명, 청정한 섬을 초록의 칼라를 사용 미래를 여는 신안인의 꿈을 천사의 날개로 형상화 함
 

군화/Symbol Flower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풍치를 더해주는 해당화는 강한 해풍에도 잘 견디고 생명력이 강하고 서로 화합과 단결을 상징하며, 소박함과 순결한 군민의 상징물이다.

군목/Symbol Tree

해풍에 강하고 항상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는 해양인의 강인한 의지와 씩씩함을 나타내며, 정직한 품성을 가진 군민임을 상징합니다.

군조/Symbol Bord

광활한 바다의 길잡이로서 도서민의 영원한 벗으로 불리우는 갈매기는 군민의 힘찬 기상과 도약의 상징으로 화합과 번영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말 신안군의 주민등록 인구는 22,272세대, 44,162명이다. 성비는 1.10으로, 전라남도 내에서 성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신안군(에 해당하는 지역)의 연도별 인구 추이

 

연도총인구 
1960년157,720명
1966년174,996명
1970년163,883명
1975년157,502명
1980년130,979명
1985년115,025명
1990년102,409명
1995년62,472명
2000년46,315명
2005년38,463명
2010년33,222명


 

 


행정구역

 

행정구역
출장소법정리운영상리자연부락
2129143343502844


면적 및 도서

 

도/서
면 적 (㎢)도 서해안선(km)
임야기타유인도무인도
655.5107.7104.3326.7116.81,004729321,735


가구 및 인구

 

도/서
가 구인 구
농가어가비농어가
22,27212,4596,2793,51444,16223,14521,017


 

 

기후

신안지역은 서해안의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한반도의 최서남단에 위치하며, 전반적으로 하계에는 해양성기후, 동계에는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계절의 뚜렷한 기온변화 보다는 겨울과 여름으로 나누어진 계절변화가 두드러지며, 편서풍지대에 해당되는 우리나라의 기상현상의 발생 및 이동의 전초기지로서의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기상개황

 

월별기온변화
구분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최고8.63.98.916.722.826.228.931.025.320.712.34.8
평균1.20.65.411.917.521.825.327.321.416.69.51.8
최저-1.3-2.120.7.513.418.522.524.518.313.26.6-1.5


강수량

 

2010, 2011, 2012년도 월별강수량변화
년도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1219.535.9113.6130.439.160.4319.9488.4201.778.655.467.4
201121.153.527.284.883.8148.6202.5218.917.928.9118.417.4
201032.9104.891.2127.1109.866.6243.9281.8151.938.18.925.1


 

 

축제 정보:

 

실과소축제명개최일자(예정)개최장소주요행사내용
해 양
수산과
굴 축제01.18~19
(2일간)
압해도
  • 굴 시식회, 굴 캐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바다토하 축제잠정 연기압해도
  • 바다토하 시식회, 낚시 끼우기 등 체험행사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간재미 축제03.28~29
(2일간)
도초도
  • 간재미 시식회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대광개발
사 업 소
신안튤립축제04.18.~27
(10일간)
임자도
(신안튤립공원)
  • 공식행사
  • 문화ㆍ체험행사
  • 부대행사
해 양
수산과
홍어 축제05.02~03
(2일간)
흑산도
  • 홍어 시식회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강달어 축제5.30~5.31
(2일간)
임자도
  • 강달어 시식회, 강달어 요리만들기 등 체험행사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병어 축제06.13~15
(3일간)
지도
  • 길놀이, 용왕제, 병어 시식회, 병어 썰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송어 축제07.18~19
(2일간)
증도
  • 송어 시식회, 송어 잡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민어 축제08.08~09
(2일간)
임자도
  • 민어 시식회, 민어 요리만들기 등 체험행사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불볼락 축제09.19~20
(2일간)
홍도
  • 불볼락 시식회, 불볼락 요리만들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새우젓축제10.08~09
(2일간)
지도
  • 왕새우 시식회, 왕새우 요리만들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왕새우축제10.17~18
(2일간)
장산도
  • 왕새우 시식회, 왕새우 요리만들기 등 체험행사
  • 관광객 장기자랑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해 양
수산과
낙지축제11.01~02
(2일간)
압해도
  • 낙지시식회, 낙지요리만들기,신안뻘낙지 찾기등 체험행사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환 경
공원과
신안애기동백꽃 축제14.12.~15.02천사섬분재공원 일원
(압해읍 송공산)
  • 공식행사
  • 품종전시
  • 체험 및 즐길거리 행사
해 양
수산과
김 축제12.07~08
(2일간)
압해도
  • 김 만들기, 김 시식회 등 체험행사
  • 신안 농수산물 판매행사


※축제일정은 물때, 기상, 지역여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김대중:

- 두산백과사전(김대중):

19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8년 12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중국 및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1997년 11월부터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외환위기를 재정·금융 긴축과 대외개방,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다.
1999년 5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6월에는 미국 경제 주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아시아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에 선정되었다. 2000년 1월 자유민주연합과의 내각제 개헌논의를 유보하고, 새천년민주당을 출범시켜 초대 총재에 취임하였다.
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또한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향상 그리고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노력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 시사상식사전(김대중):

1997년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며 제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재임기간 동안 외환위기 극복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으며 사회복지제도 정비, 노사관계 안정 등의 공적을 이뤘다. 특히 통일 분야에 있어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6ㆍ15 공동선언에 합의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노벨위원회 2000년 노벨 평화상 발표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려 2000년 노벨 평화상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이 수십년간 권위주의의 통치하에 있을 때, 여러 차례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장기간의 망명생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점차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1997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씨는 확고한 민주 정부의 수립과 한국에서의 내부적 화합 증진을 추구해 왔다.
강력한 도덕적 힘을 바탕으로 김대통령은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들에 맞서 동아시아 인권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버마(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그의 헌신적 노력 역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햇볕정책'을 통해 김대통령은 50년 이상 지속된 남북한간의 전쟁과 적대관계의 해소에 노력해 왔다. 그의 북한 방문은 남북한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 큰 동력이 되었다.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한 인근 국가들, 특히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 왔다.
노벨위원회는 한반도의 화해 진전과 통일을 위한 북한 및 다른 국가 지도자들의 기여를 인정하고자 한다. 

 

[노벨상 로비설]

노벨재단은 "노벨상위원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같은 로비가 있더라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벨재단은 또한 노벨상 로비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노벨위원회의 군나르베르게 위원장은 노벨상 로비설에 대해 "매우 무례하며,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대중측이 아닌 오히려 김대중의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으며, 반대자들의 편지가 왔다"라고 말했다.
동티모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제 하무스 오르타가 로비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월간조선 기자에게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라고 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노벨상 로비설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환영하고 축하해야할 일을 노벨상 반납까지 운운하며 로비설을 흘리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즉, 노벨 평화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는 세계적인 '대한민국 국가 망신 사건'인 것이다.


1990년부터 노벨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온 룬데슈타트는 "누군가 뇌물로 매수하려는 인상을 줬다면 위원회는 오히려 반감을 가질 것이고, 노벨상 선정 과정에 외부 로비가 있을 경우 해당자를 제외시키고 선정작업을 더욱 까다롭게 진행한다"고 말혔다. 이어 룬데슈타트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상을 받아냈다는 일부 주장은 편견이며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노력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노벨재단에서 50년간 일해 온 유일한 동양인 한영우 노벨재단 특임고문은 "노르웨이 정계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을 했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지요. 옥중(獄中)에 있을 때는 노르웨이 정부가 한국 군사정부에 석방을 탄원하기도 했어요"라고 했고, 박경서 전 인권대사는 "노벨상은 로비를 할수록 수상이 멀어지며 금전의 개입은 어불성설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1987년에 강력한 노벨 평화상 후보였다"고 말했다. 

 

[인격관련]

김대중 전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꼬박 꼬박 청와대로 초청해서 밥 먹였습니다. 배알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랬을까요? 그릇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토록 증오하고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박정희입니다.(몇년전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대신 사과한 적 있음).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대를 무릅쓰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산 민주공원 개장식에 참석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면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독재정권이라고 몰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개장식이 끝나고 뒤도 안돌아 보고 연단을 내려 가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등을 치면서 악수를 청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였습니다.
자꾸 뭔가를 물고 늘어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섭섭한 표현 단 한 마디 한 적 있는가? 없습니다.
위와 같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릇이 크기 때문에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적이나 배신자를 해치거나 비난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들면 새누리당의 모의원은 80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학생들의 시위를 주도한 사람이었는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이해찬 김옥두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으로 부터 돈을 받았다거나 내란을 음모 했다는 진술을 거부했는데, 그 의원은 신군부가 원하는 답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종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이 확정 되었을 때 심재철이 보고 동지 고생 많았다고 했습니다.

또 대통령 재임 이전부터 줄기차게 자신을 괴롭혀온 정형근과 국회의사당내에서 마주쳤을 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고 어느 토론회에서 정형근 본인이 이야기 하더군요. 그러면서 그의 정책과 사상이 맞지 않은 것이지 인간적으로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토록 씹어대도 김영삼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던 것이죠..

 

[군복무 문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에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군 복무 의무가 없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6·25전쟁 동안 군 복무를 기피했다, 목포해상방위대는 유령 군부대이다"라는 신한국당(새누리당) 측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목포해상방위대는 1950년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38호와 국방군사연구소에서 발행한 국방사연표에 분명히 근거가 있는 실존 군부대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해상방위대 부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해병대 예비역 준장 송인명은 "목포 경비 부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군과 경찰만으로 공산세력의 잔당소탕과 안녕질서 유지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목포시내 청년단과 여성청년단 등 애국단체들을 모두 동원해 작전을 보조하게 하였으며, 특히 해상 작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시 지역 유지 오재균에게 지시, 해상방위대를 창설해 김대중에게 부대장을 맡겼다"고 증언했습니다.
1997년 국방부가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해상방위대는 목포지역에서 약 1년간(50-51년) 존속되었습니다. 해군 목포경비부 연혁사 39쪽에 '당 경비부내 보조기관인 해상방위대를 총참모장의 명으로 완전 해체하고 건물 일체를 인수함'이라는 51년 5월 3일자 기록도 있습니다.

 

[한일어업협정 관련]

한일어업협정 공동수역의 발단은 박정희의 독도밀약입니다.
그리고 신 한일어업협정은 김영삼 정부 내내 일본과 협상 해왔었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협상 막바지에 오히려 수역을 늘려놓고 마무리 정리한 것입니다.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의 영유권이 침해 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어업을 위해 한일 양국이 정한 수역과 섬의 영유권 내지는 영해 문제는 서로 관련이 없다며 기각했습니다.
독도가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한일중간수역에 놓인 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으나, 어업협정은 영토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합니다. 신 한일어업협정 조문에서도 이 협정은 영유권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어업협정은 어업 문제에만 국한됨을 판시했습니다.
독도를 한일중간수역에 놓이게 한 신 한일어업협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실효성이 없습니다. 협상을 다시 한다고 해도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는 것입니다.

 

[북한 핵 문제] 

원자력기구 발표: "북한의 핵개발은 1960년 초반부터 계획했으며 1993년 완공 되었다"
미국 CIA 1994년 발표: "북한은 1992년 이전에 핵개발을 끝냈다"
황 전 비서 증언: "1996년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지하에서 핵실험을 할 정도로 이미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가 상당수 만들어져 있다"
즉, 북한의 핵개발은 1993년 완공 핵무기화하고, 추진체 개발이 다소 늦어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문에 북한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북한핵은 예전부터 진행중이었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압니다.
새누리당에서도 잘 압니다.
북핵 가지고 일부 무리가 하두 장난을 치니까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도 말한 적이 있지요.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참으로 나쁜 습성입니다. 노벨평화상은 대단한 것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업적]
1. IMF(경제위기,국가부도사태)극복과 구조조정(기업,은행,금융,민간 4대 부문에 대한 개혁) 등 경제적 업적: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을 앞서기 시작하는 분야(IT. NT.BT.금융산업.문화산업)가 출현하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
2. 지식정보화산업 육성: IT 강국 인터넷 강국 실현, 과학기술혁신
3. 한류문화산업 육성, 문화발전(문화예산 비중이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았고, 문화산업 각 분야 크게 발전)
4. 민주화의 완성과 평화적인 정권교체 그리고 남북화해
5.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국위 선양
6. 인권신장(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등)
7. 용서와 화해(자신을 핍박하고 민주화를 거부해 타도해야 할 독재자로 설정했던 박정희 기념사업 지원. 전두환 사면 건의 등)
8. 외국에서도 긍정적 평가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며 정적들이나 배신자들을 해치거나 비난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에게 알리라'는 말을 하는 등 국민을 솔직히 대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인천공항 건설 등 중국과의 경제교류에 대비하여 서해안 시대를 열었다.
조선, 반도체 산업이 꾸준히 발전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이란 구호를 내세웠다.
IMF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하여 경제 장관들을 사심없이 등용했다.
벤처기업을 키웠다.
금강산 육로와 해로 관광 실현, 경의선 철도 복원

 

[국제적 평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용기있는 민주화와 인권 투사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운동을 일으키고 이끌어 오는데 목숨을 바쳤다. 그의 조국에 대한 헌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자유를 위한 개인적인 희생은 고무적이며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김대중 구명을 위하여 와인버거 미 국방부 장관과 그레그 전 대사를 한국에 급파했고, 이들은 전두환 신군부를 상대로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 "전 국민이 외환위기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뛰어 난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한국 국 민들에게 행운이다."

미국 국무부: “김 전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에 영감을 일으킨 지도자이자 상징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 의원: “당신은 한국의 존 F. 케네디다. 당신과 나는 민주와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지지한다.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감하고 강력한 이상을 가진 지도자였다. 한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어서게 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닦고 국제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 그와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렸다. 햇볕정책이 한국 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도 영속적인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제공했다”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워싱턴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대표 에드윈 퓰너: “김대중은 진정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절친했던 벗”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 소장: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통찰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의 비범한 삶 전체가 기억될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보여준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역사적인 평양방문은 그가 남긴 현란한 유산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 주한 미국대사인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 “50여 년간 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아시아인 3명이 바로 김 전 대통령과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 강력한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 “평생을 민주화와 한국의 발전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헌신해온 분이다. 노벨 평화상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삶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으며, 특히 수십 년간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우며 투옥도 당하는 등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고, 영웅이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 통신: '김 대통령의 업적' 이란 칼럼에서 "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김대중씨는 한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집행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편지였다. 1980년 12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주재 로마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1차 편지를 발송해 김대중의 선처를 당부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김 전 대통령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분이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정말 기뻤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김 전 대통령은 격동의 시기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아시아 금융위기 시에는 한국의 빠른 경제 회복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며, 세계 인권수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빌리 브란트 독일 사민당 총재: “김대중씨에 대한 사형 선고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조국의 사회적 발전과 인권수호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의 노력이 이런 판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집행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막대한 손상을 입으므로 대통령이 판결이 수정되도록 조치할 것을 긴급히 요청한다. 김대중씨 구명에 모든 힘을 발휘해 줄 것을 미국 정부에도 긴급히 요청한다”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나의 오랜 친구이다. 김 전 대통령은 불굴의 용기,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한민족 전체의 평화를 위한 탁월한 기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40년 동안 깊은 우정을 나눴던 그는 특히 독일 연방하원 부의장으로 있던 1980년 김대중이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자 하원에서 ‘김대중 구명 결의안’이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등 국제적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민주주의자이다.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독일과의 오랜 인연으로 독일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김 전 대통령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좋은 친구이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양국관계의 심화와 교류강화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프랑스 정부(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부 장관 명의 성명):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쳐 지칠줄 모르고 투쟁한 용기있는 정치인이었다. 또한 인권과 평화를 위해서도 헌신한 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중요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형성, 한반도의 평화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평화,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알아왔고 그의 용기와 선견지명을 매우 높게 사 왔다. 그는 대통령 임기 말 건강에 문제를 겪으면서도 한반도를 재결합시키면서 남북문제 해결책을 계속해서 찾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대외 창구인 만델라 재단: “우리는 그가 인권을 위해 싸우고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기억한다.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를 평화공원으로 전환하자는 만델라의 아이디어에 공감을 표시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5월 대선을 앞둔 김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셋째 딸 진드지 여사 부부를 보내 자신이 27년 동안 옥중에서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승리를 기원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이에 당시 김 전 대통령도 유신 체제와 망명 시절을 거치며 20년 동안 간직해온 낡은 가방을 답례품으로 전달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중국 국민의 가까운 친구이다. 중국 정부와 국민은 그가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쏟았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김대중 선생님은 나의 오랜 벗으로 중한관계 발전을 위한 그분의 공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김 전 대통령의 업적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

가와무라 다케오 전 일본 관방장관: “한일 관계를 비약적으로 진전시킨 대통령이다.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고 문화교류를 진전시켰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 개선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대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한국 근대화에도 큰 공헌을 하신 분이다”

고노 요헤이 일본 전 중의원 의장: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였다” 

 

[국내 국외 평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하여 왜 국내 일부 무리는 외국과 다른 평가를 할까요?
그 이유는
1).우리나라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만들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작,왜곡된 이미지로 인한 편견,
2).지역감정,
3).반대파의 정략적 공격

때문입니다.

 
[장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 중에는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42개국이 조전을 보내왔고 미국,중국,일본 등 11개국이 영결식에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하였다. 세계 언론들도 사망 및 국장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제적 비중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이라며“ 한국이 아니라 전세계가 큰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다.

김동길 전 연세대교수: “한 시대의 풍운아 김대중 형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부지기수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그렇게 불러보고 싶은 것 뿐이니 너그럽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11월 13일, 일본 도쿄 아사히 신문사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시절과 대통령 재임 시 인연을 맺은 일본 정계,학계,종교계 인사와 교포 등 2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모임’이 주관했다. 한·일 양국의 정·관계,학계,종교계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김 전 대통령 추모 영상 상영과 추도사,성경 낭독과 기도,헌화 순으로 3시간 동안 진행 됐다. 일본 측에서는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과 센고쿠 요시토 행정쇄신상이 인사말을 하고,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교수와 이토 나리히코 주오대학 교수가 추모사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영결식은 여의도 국회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2014.04.14.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