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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성우

[ 李誠宇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정이소 전후면

의열단원 6인의 단체사진. 앞줄부터 정이소, 뒷줄 왼쪽부터 이성우, 김기득, 강세우, 곽재기, 김원봉이다. 김익상의 사진을 오른쪽 아래에 덧붙여 두었다.

이칭별칭 기타 성우(成宇)
유형 인물
시대 근대
출생 - 사망 1899년 ~ 1929년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함경북도 경원(본적지), 노령 동부시베리아 우스문(출생지)
성별
대표관직(경력) 건국훈장 국민장

정의

일제강점기 의열단을 조직하여 총독부고관사살, 주요기관 폭파등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성우(成宇).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이고, 노령(露領) 동부시베리아 우스문에서 출생하여 그곳과 중국 국경에서 성장하였다. 1918년 이종암(李鍾岩, 李鍾嚴, 梁健浩)·서상락(徐相洛)·강세우(姜世宇)와 함께 만주 통화현 합니하(通化縣 哈泥河)에 있는 신흥학교(新興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지금은 배우기 보다는 실행할 때라며 동지들과 함께 학교를 자퇴하고, 길림(吉林)에 가서 같은해 11월 김원봉(金元鳳)·이종암·서상락·강세우·한봉근(韓鳳根)·곽재기(郭在驥)·신철휴(申喆休) 등과 같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총독부고관 사살, 주요기관 폭파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김원봉과 함께 상해에 가서 폭탄 20여개와 권총, 탄환 약 100발을 구입하였다. 1920년 5월 곽재기·황상규(黃尙奎) 등과 같이 서울에 들어와 의열단의 1차의거대상인 밀양경찰서 폭파를 준비하던 중, 6월 이 계획을 탐지한 일본경찰에 잡혀 1921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청진형무소로 이감되어 복역중인 1922년 8월 감방의 동료들과 탈옥을 하려다 실패하여 형이 2년 가산되었다. 1928년 3월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
  • 『한국독립운동사』2(이현희·박성수, 한국일보사, 1988)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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