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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님의 착한 일?
비공개 조회수 4,999 끌올 작성일2018.10.26
성경적으로 볼 때

야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착한 일 한 것은 뭐가 있나요?

성경을 계속 보지만
대체 착한 일 한 것이 안 보이네요.

복을 줬다는 욥에게도
열 명의 자녀들이 다 죽을 때까지 방관했구요.

예수도 비참한 말로를 겪었죠.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고생도 없이 복을 누리다 간 사람은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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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개 답변
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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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바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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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내생각을 적은글이 아니잔아요
하나님의 영감을받은자들이 적은거 잖아요
사람의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다릅니다
내기준을 믿는다면 님 자신을 믿는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그 말씀이 눈에 안들 오는건 님이성령체험이 없기때문입니다
내 상각이 성경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33절
먼저 기도하세요
그라구 이뜻이 먼뜻인지 찾아보세요
하나님의 복은 거져 주지만 시험없이 주시지 않아요
시험을 통과한자만이 복을 받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시험에 넘어지구
시험은 안받으려구하면 상만 찿지요
고난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뜻을 알게되는것이 은혜라는겁니다
하나님은 그자제가 선한일이십니다
독생자를 죄인들을위해 보내주셧잔아요
님같음 할수 있나요
그리고 그독생자도 결국 하나님자신이십니다
님같음 원수를 위해 님자신을 산제물로 바칠수있나요?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그라구 먼저 감사하시길기도합니다

20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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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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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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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얻으시기 위하여 창조하셨고, 인생이라는 불완전체인 피조물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성장하게 하기위하여 놓여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방법, 곧 영이 사는 방법을 성경에 제시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영이 살아야하는 이유와 방법과 과정등 모두 영적인 내용만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 복” 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부터 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이란 “말씀을 따라서 유한한 인간적 자신을 죽이고 나서 영이 사는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신에는 “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또 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라고 말씀하셨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봅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은 내보내고 이삭 하나를 얻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적 시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달라집니다. 영이 산 아브라함은 죽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으로 그 안에서 낳아지는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후손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가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어떤 시각에서 읽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진리냐 아니냐로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악이다” 라는 말에서 “악” 이란 “나쁜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이란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윤리적, 법적 범위 안에서의 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또한 성경을 인간적 관점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적 결과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유한” 의 범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비진리입니다. 그래서 “악”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입니다.



1 우스<변론> 땅에 욥<핍박 받는>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純(생실, 순수할 순)全(온전할 전)하고 正(바를 정)直(곧을 직)하여 하나님을 敬(공경할 경)畏(두려워할 외)하며 惡(악할 악)에서 떠난 者(사람 자)더라


1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순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우스 땅: 특정지역이 아니라 ‘의논하다.’ 혹은 ‘토론하다’ 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이사야서의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의미를 지닙니다. 본 욥기가 그리스도와 선민들과의 영적 쟁변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4장]

18 그 怨(원망할 원)讐(원수 수) 에돔<붉은>은 그들의 産(낳을 산)業(업 업)이 되며 그 怨讐 세일<많은 털>도 그들의 産業이 되고 그 同(한 가지 동)時(때 시)에 이스라엘<하나님이 상대해 주신 자>은 勇(날쌜 용)敢(감히 감)히 行(갈 행)動(움직일 동)하리로다


➺ 세일: ‘털이 많은’ 의 뜻으로 ‘에서’ 와 같은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일의 후손들이 살던 세일 산에 호리족이 살았고, 그 후에 에서가 그곳에서 살았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족이 그곳에 살았다고 전해지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의미는 본문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돔과 세일을 동의어로 쓴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에돔 = 에서 = 우스 = 세일 = 장자의 명분을 버린 자 = 유대인 = 모든 멸절 당하는 세대의 공의를 관장하던 자가 됩니다. 이 우스 땅이 실제 성경 상으로는 그리스도가 오신 유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우스 땅이란 멸절된 선민의 땅이며, ‘어둠에 덮인 온 세상’ 을 뜻하는 것이고, 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를 뜻합니다. 시편 60장에는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변론의 승리로 십자가 사건이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60장]

8 모압<씨앗>은 내 沐(머리감을 목)浴(목욕할 욕)桶(통 통)이라 에돔<붉은>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진흙탕에서 뒹구는>아 나를 因(인할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堅(굳을 견)固(굳을 고)한 城(고개, 재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붉은>에 引(끌 인)導(이끌 도)할꼬

 


➺ 신을 던진다: 세상에 왔다간 흔적인 이전 공의를 관장하던 자들을 멸했다 혹은 세상을 이겼다는 증거를 ‘세상에 속한 자’ 들에게 줘서 멸절의 증거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 그들의 멸망의 증거로 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다가 가시면서 벗은 신발이 곧 욥기입니다. 결국, 장자의 명분을 버린 선민들에게 와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그들에게 신을 던진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에돔에 인도할꼬: 이 말씀은 아가서 2장 4절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와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 견고한 성: 견고한 논리적 구조를 가진 구원의 논리,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달림으로 공의가 실현이 되며 완성되는 성령의 법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논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2 그 所(자리, 바 소)生(날 생)은 男(사내 남)子(아들 자)가 일곱이요 女(계집 여)子(아들 자)가 셋이며


2 그가 낳은 자식들은 남자가 일곱이며, 여자가 셋이었고


# 남자 일곱: 남자는 선민으로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구원을 얻은 자들의 수입니다. 일곱 명이 아니라 선민 중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수’ 를 뜻합니다.


# 여자가 셋: 여자란 낳을 수 있는 자로 그리스도 이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된 이방인들입니다. 셋인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 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기에 셋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복음서의 이해]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셋은 셋째 하늘이나 삼층, 노아의 세 아들 등 ‘하나님이 직접 베푸시는 은혜의 수’ 입니다. 삼십 배가 그것이고, 요한계시록의 사방에 있는 세 개의 문이 그것입니다.


3 그 所(자리, 바 소)有(있을 유)物(만물 물)은 羊(양 양)이 七(칠)千(일천 천)이요 약대가 三(삼)千(일천 천)이요 소가 五(오)百(일백 백) 겨리요 암나귀가 五百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東(동녘 동)方(모 방) 사람 中(가운데 중)에 가장 큰 者(사람 자)라


3 그가 가지고 있던 소유물은 양 칠천, 낙타 삼천, 소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에 종도 많이 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입니다.


# 양이 칠천: 양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람이고, 7은 ‘만민 중에’ 를 말하고, 천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의 완전함’ 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 약대 삼천: 이것은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파하신 이후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받는 자의 수이며, 역시 꽉 찬 수로 표현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입고 왔던 옷이 약대 털옷입니다. 약대는 광야로 변한 악한 세상에서 생활하기 적합한 짐승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이후에 구원을 획득하게 되는 이들은 모두 부정한 가운데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이 짐승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부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부정을 상징하는 누런 털옷을 세례 요한이 입고 있었다고 묘사된 것입니다.


# 소가 오백 겨리: 소는 일꾼을 상징합니다. 오백이란 죽음을 인지한 선민의 수입니다. 사도들도 이 오백 겨리의 소에 해당합니다. 5는 죽을 자이면서 하나님을 향한 자들의 수입니다. ‘선지생도 50인’ 도 그런 의미입니다. 백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가 씨를 뿌려 얻은 수이고, 또 이것이 일천이 안 되고 아직 오백인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나누어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 암나귀가 오백: 나귀는 이방인을 뜻하며, 암나귀라고 한 것은 ‘낳을 자’ 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이후의 제자들은 모두 낳아야 하는 소명이 있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선민들에게는 육신의 자식을 낳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낳음이 되었고, 그 낳음이 곧 선민으로 낳아진 것이기 때문에 낳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의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를 통해 영이 사는 자를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암나귀란 그리스도 이후 죽을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아난 이방인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가시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본 나라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하여 보내지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 모든 사람, 즉 양, 나귀, 약대, 소는 모두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의미입니다. 십자가 이전에 공생애 기간 동안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된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뒤편에서는 위의 것들을 모두 ‘배로 받는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그 배라는 것도 당연히 숫자를 말함이 아닙니다. 신구약을 통합하는 완전함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아가서의 ‘실과를 지키는 자’ 가 ‘이백’ 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의 율법과 마음의 율법을 통하여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얻기 때문에 백배의 두 배인 이백이 되는 것입니다.


# 종도 많이: 사도를 포함한 제자들입니다.


# 동방 사람: 홍해를 가른 바람은 동풍입니다. 그리스도의 때와 노아 때와 출애굽 때가 같을 것이라고 복음서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해(말씀) 뜨는 곳이 동편이듯 말씀과 관련된 것이 오는 방향은 모두 동편에서 오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아기 그리스도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동방박사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큰 자’ 란 말씀이 오는 방향에서 가장 큰 자인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중략....


위의 내용이 있는 곳은 네이버 카페 "마음의 율법" 입니다. 님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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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땅
식물신
개신교, 연애, 결혼, 소규모종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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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고생없이 복을 누리다가 간 사람은 성경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욥도 열명의 자녀가 다 죽었지만 끝에 읽어보시면  (욥 42 : 7~ )

다시 열명은 자녀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비참한 말로가 아니라~

우리들이 지은 모든죄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에게 죄를 다 넘기셨습니다.

육신으로 비참한 말로처럼 보이지만 영으로는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시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는 산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0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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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shop
초인
개신교 53위, 가톨릭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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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말년은 심히 창대했죠

예수님은 자진해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고, 부활하셨죠

그리고, 영생복락은 개인의 주관이 아닐까요?

성경에선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영생복락누리다 간 사람은 없다 봐야해요

그러나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여
썩어질것인 물질 없이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많이 소개되고 있죠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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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
고생을 안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 하시는군요?
이건 인간적인 생각으로 드리는 말씀인데요.
고생을 안하고 살면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수 없어요. 
지식은 글로 배울수 있지만, 지혜는 글로 배울수가 없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왜 있을까요.
그 고생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님이 하시는 말씀의 
포커스가 하나님 믿어도 왜 고생하고 살아야 하냐고 
묻는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 이었습니다. 
믿으나 안믿으나, 인간에게 고생은 필요악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비관하는것 보다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사는게
스스로에게 좋습니다. 어릴때 고생 안하고 살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지혜롭지 못해 바보 취급 받아요.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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