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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정희 대통령에 부정적인 평가
jini**** 조회수 3,940 작성일2019.04.10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적인 평가좀 알려주세요ㅠㅠ사회숙제ㅠㅠ최대한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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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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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일일생활권이 가능해진 사회, 경제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된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

-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진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고속도로 건설계획. 1970년 7월 7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 공사'라고 불렸고, 근대화의 성공적 진전을 상징하는 사례로 비춰졌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박정희 정권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비로소 '전국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총연장 대비 공사기간을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연장 20킬로미터였던 본-쾰른 간의 아우토반을 달리게 되었는데, 고속도로의 수송능력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였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외국에서 빌리고, 도로 건설 이후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거두어들인 통행료로 빌린 돈을 갚기로 했다.

박정희는 "이 공사는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이며 민족적인 대예술작품"이라고 했고, 그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오원철은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다. 구상부터 계획, 감독, 검사를 혼자서 해냈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창시자요 대부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역사상 박정희 고속도로로 남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공사는 단순한 건설 공사가 아닌, 군사 작전과 같이 군대식 총력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사였다. 오원철은 "고속도로 건설 동기, 추진 방법, 공사 방식이 모두 군대식이었다"고 평가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원래 1971년에 개통 예정이었으나, 무려 1년을 앞당겼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에 불과했지만 1979년에는 1,636달러를 기록해 연평균 18퍼센트 증가했고, 수출은 연평균 38퍼센트 증가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 절대 빈곤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현명한 지도자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발전에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큰 역할을 했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가 각계 인사 100명에게 찬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5%가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야당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계획에 극심한 반대를 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렵고 차도 별로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2대 경제권의 중심인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여 경제발전의 첩경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이유에서 건설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1967년 초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방대한 구상을 끝내고 몇몇 구간의 노선까지 손수 결정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속도로는 박정희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 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1968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인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1970년 7월 7일에는 연장 428킬로미터, 4차선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73년에는 연장 251.8킬로미터, 2차선인 대전-순천 간 호남고속도로와 연장 176.5킬로미터, 2차선인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또한 1975년에는 연장 201킬로미터, 2차선인 수원-강릉 간 영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후 철도 위주의 수송 구조가 도로로 바뀌었고,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연결되었다. 공업 단지도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되었고, 산업 발전과 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고속도로 건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헀다.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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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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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이런과제를 주다니... 정말 부끄러운 나라다.

  거지같은 나라에서 이런 과제나 주는 부끄러운 인간들을 데리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쉽으로 세계 최빈곤 국가에서 선직국으로 만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어려운 지도잔데...

지금 그 시대를 경험하신 분들이 돌아가시고 없으니...역사를 왜곡해서 학생들에게

  이런 과제나 주면서...정말 이런사람이 선생질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미래 너무 걱정된다.

 

이런 선생들의 가르침이 일제식민지를 가져온 밑 바탕이 아닌지...

   제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시길 간절히 바래본다.

 

 요약하면 박정희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북한보다도 더 못살고..

    99%로가 거지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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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장기 집권에 거슬린다고 생각이 되면 아무리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어도 본보기 삼아 없는 죄를 뒤집어 쒸워서 처참하게 일그러 뜨린 악랄한 자였죠.

우리집은 그런집이라서 머리에 바람구멍 난뒤에에서야 해금 되어 숨통은 트였는대 이미 망가진 가족이 쉬 일어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자 대갈통 바람구먼 나니 우리집에선 만세 불렀답니다.

 

그걸 전두환이도 따라 했고요.

 

그리고 전 운돈권에서 살기도 했어요.

그건 박정희가 만들어준 길이죠.

그런대 지금은 내가 왜 그랬나 한답니다.

저 속도 창자도 없는 빠놀이에 미친자들이 나라가 망하는줄도 모르는 한시ㅣㅁ한 놀이만 하고 있는걸 보고 그때 내가 최루탄과 백골단의 몽둥이와 싸웠던걸 후회 한답니다.

그냥 적당하게 살다가 기회나 볼걸 뭔 지이라알을 한거냐 하고요.

나라를 빠놀이터 만들려고 그고생을 하던 안했거던요.

 

그래도 박정희는 어쨌던 원수이고 악랄했어요.

뭐 경제 대통령이요.

빵까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하고 청구권 협정으로 비굴하게 얻어온 돈 그 돈도 다나 썼나 모르는대 그 돈이 살린거고 거들떠도 안보려 했던 박정희를 미국이 당시 소련과 중국에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적극적으로 원조 해주는 덕을 본거고(당시 미국 대통령 케네디) 월남전의 용사들이 피와 바꿔온 물자나 달러가 자동으로 살려준거지 지도력이 뛰어나서라는 개가 대갈통에 뿔이 여섯개 나는 소리같은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더라고요.

난 그 많던 돈의 행방이나 좀 제대로 밝혔으면 좋겠어요.

그나마 푼 돈이라도 지역 차별없이라도 풀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박정희가 수완이 좋아서 원조를 받았다??????????

그건 대가리가 빠가들이 하는 소리고요.

어쩔수 없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그것도 자기가 잘나서 가져다가 준것마냥 하면서 지역 차별을 두어서 지급도 한 그런 인간 이었답니다.

 

지금은 미국도 시기가 지나서 개방도 했고 암암리가 아니고 다 밝혀지기 까지 했는대도 지금도 헛소리들을 해대는지 답답도 하더라고요.

 

그런대요.

난 나중엔 말단이긴 했지만 김대중의 적극적인 선거 운동원으로 활약 했습니다.

그런대 대통령이 되더니 나라 재난(IMF 체제)시대여서 였는지 모든것 용서 한다네요.

아니 이런 잰장할 어느 누구도 잘못 했다고 한자가 없는대 누구를 용서 한다는지 참 어이가 출장 가더라고요.

박정희는 이미 머리에 바람구멍으로 가버렸으니 부관참시나 하면 모를까 그렇다 치지만 전두환이고 노태우고간에 당시 죄지은자들은 잘못 했다고 한자들이 없는대 용서를 한다네요.

박정희도 마찬가지여요.

국민의 반 이상이 박정희 그자가 뭘 잘못 한지를 모르는대 뭘 용서 한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최소한 뭘 잘못했다라고 대충이라도 알게는 하고나서 용서를 하던 맷동을 파서 국립묘지에서 강물에 띄워 버리던간에 해야 할것 아녀요.

 

난 그때 ㅉㅉ 김대중 저분이 너무 늙었구나 했답니다.

 

이정도면 그냥 농사꾼에 지나지 않은 동네사람에게 천추에 한을 심어버린 거짓으로 포장된 인간 늑대 박정희 잘못 대충 알겠나요.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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