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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지성에 대한 모든것을 알려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1,159 작성일2015.10.31

질문 그대로 입니다.

박지성 선수의 프로필, 지금까지 해온 업적, 어느팀에 있었고 어느대회에 참가했는지

하나씩 자세하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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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건 프로필 입니다. ^^



출생
음력 1981년 2월 25일
신체
175cm, 72kg


이건 박지성이 뛰었던 프로팀 

프로전에는

안용중학교, 수원 공고, 명지대 



2000.01 ~ 2003.01

교토상가 FC (일본)

76경기 11골

2000년에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엔 (2000년 당시 한화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상가로 입단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003.01 ~ 2005.07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65경기13골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에레디비지에의 PSV 아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2005.07 ~ 2012.0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134경기 19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며 포효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2012.07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잉글랜드)

20경기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이적료 500만 파운드(약 88억원)로 2년 계약을 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QPR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의 번호는 아델 타랍이 사용하던 등번호 7번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원래 박지성은 QPR의 비어있는 5, 8, 14번 중 8번을 선택했으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결정 하에 7번을 달게 됐다.7번은 박지성이 선호하는 백넘버이며, 팀내 에이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2013.08 ~ 2014.06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임대

23경기2골

2013년 8월 6일 SV 에인트호번과의 계약 절차를 마무리하고 8년 만의 네덜란드 복귀를 확정했다. 계약 조건은 1년 임대로 연봉 및 지급 방법 등의 세부 사항은 양 구단의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2004-05 시즌을 끝으로 PSV 에인트호번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건너간 지 8년 만에 네덜란드 무대로 복귀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함께하였고,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필립 코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백넘버는 33번으로 정했다.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번에서 23경기를 출전하여 2골을 넣었고, 팀을 다음시즌을 위한 유로파리그 출전 티켓을 흭득하도록 이끄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교토 퍼플 상가

  • 2001년 J2리그 우승
  • 2002년 천황배 우승
PSV 에인트호번
  • 에레디비시 : 2002-03, 2004-05
  • 에레디비시 준우승 : 2003-04
  • KNVB컵 :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실드 : 2003
  • 요한 크루이프 실드 준우승 : 2005
  •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 2004-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프리미어리그 : 2006-07, 2007-08, 2008-09, 2010-11
  •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 2005-06, 2009-10, 2011-12
  • FA컵 준우승 : 2006-07
  • 풋볼 리그 컵: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 2007, 2008, 2009, 2011
  • UEFA 챔피언스리그 : 2007-08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8-09, 2010-11
  • UEFA 슈퍼컵 준우승 : 2008
  • FIFA 클럽 월드컵 : 2008
대한민국
  • 2000년 AFC 아시안컵 3위
  • 2002년 CONCACAF 골드컵4위
  • 2002년 FIFA 월드컵 4위
  • 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 2011년 AFC 아시안컵 3위
개인
  • 1992년 제5회 차범근 축구상장려상
  • 2002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포르투갈 (조별리그)
  •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 2002년 일본 오사카경제법률대학교 표창장
  •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3년 피스컵 골든볼
  • 2004-05 KNVB컵 MVP
  • 2004-05 에레디비시 베스트 XI
  •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베스트 XI
  • 2005년 에스콰이어 선정 "한국을 빛낸 10명의 남성"
  • 2005년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20인"
  • 2005년 환경 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한 100인"
  • 2006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프랑스 (조별리그)
  • 2007년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차세대 지도자
  • 2007년 FIFA선정 아시아 최고의 선수상
  • 2008년 슈퍼매거진 슈퍼어워즈 아시아 선수상
  • 2009년 제40회 경기도 체육상 스포츠 스타상
  • 2010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vs. 그리스, vs. 나이지리아 (이상 조별리그)
  • 2010년 대한축구협회올해의 선수상
  • 2011년 AFC 아시안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호주 (조별리그)
  • 2011년 메이저 리그 사커 올스타전 MVP


국가대표 대회



2000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남자 축구 국가대표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2002

제17회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국가대표


2004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6

제18회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10

제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국가대표


2011

제15회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성인국가대표는  100경기 13골

u23은 23경기 3골

u20은 2경기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과 2006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 때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2002년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골은 한국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2번째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켰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와 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결국 박지성은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되었다.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국가대표 은퇴 직전까지 주장을 맡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3승 3무라는 무패의 성적으로 본선 직행하는 데 기여하였다.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에서 펼쳐진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득점을 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후반 7분 개인 드리블에 의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에 이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로, 아시아인 최초 본선 3회 연속 골 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으며 안정환이 갖고 있던 아시아인 본선 최다 골(3골)과도 타이를 이루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 2 무승부를 거두고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 활약으로, 박지성은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박지성은 2011년 AFC 아시안컵이 시작되기 전에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나면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하였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대회 4강 일본전에서 박지성은 자신의 A매치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되었는데, 이 경기가 박지성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었다. 박지성은 우즈벡의 2011년 AFC 아시안컵3, 4위전에는 뛰지 않았고,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난 이후 그의 말대로 이영표와 함께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1월 31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11년간 뛰었던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경기스타일


주 포지션은 윙어로,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이며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므로 양쪽 측면에서 모두 뛸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을 잘 활용하는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도 보였다. 패싱력 또한 준수한 편이며 팀의 승리를 위해 항상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2009-10 시즌의 중반이 지날 무렵에는 소속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그 시기부터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여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16강 1, 2차전에서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그의 진가를 입증하였다. 특히 리오 퍼디난드, 라이언 긱스, 파트리스 에브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 경기를 그의 커리어 중 최고의 경기로 뽑기도 했다. 그리고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그 후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 가며 기용되었다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이적한 후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뛰어난 활동량과 수비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박지성선수의 업적이라고하면 일단 축구국가대표팀의차원과 해외축구의 차원 2가지로 나눌수가있습니다. 먼저 국가대표의면에서보자면 2002월드컵 4강신화의 주축멤버였죠. 조별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결승골을넣으면서 우리나라의 16강진출을 확정시켰고요. 4강진출의 공신중 한명이었죠.

그리고 독일월드컵에서도 조별예선2차전 프랑스전 동점골을넣으며 귀중한 승점1점을 따는데 큰역할을했고요.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조별예선1차전 그리스전 승부를결정짓는 쐐기골을넣으면서 원정첫 16강이라는 업적에 밑거름이되었죠.

박지성선수의 3회연속 월드컵골은 대기록이고 이기록을 가진선수도 얼마없죠

하지만 이런 산술적인 기록의 수치는 업적이라고 볼수없고요

간단명료하게 우리나라의 축구를 한단계 더 업시키고 발전을 이룩한 장본인이 바로 박지성선수이죠.

2002월드컵4강과 2010월드컵 첫원정16강을 이끈 주역으로서 우리나라축구가 세계축구와 어깨를 나란히하게 만든 1등공신이 바로 박지성 선수라는 겁니다.

그리고 해외축구로보았을때도 결론은같습니다.

대한민국축구의 위상을 높여주었고요. 제일중요한게 이제 어린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게된 발판을 마련해준것이 박지성선수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해외진출이있긴했지만은요.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박지성선수이죠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최고의 리그입니다. 이곳에 대한민국국적을가진선수가 간것이죠

그것도 리그 중위권,하위권팀이아닌 잉글랜드 최고의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습니다.

이곳에 대한민국국적의선수가 한국인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것도모잘라 맨유라는 팀에 들어간거죠.


박지성선수로인해 바로그뒤에 이영표선수, 그리고 훗날 설기현선수라던지 지금의 이청용,지동원,박주영 선수등 모두 박지성선수의 영향이 있던거죠. 박지성선수가 길을 터놨기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선수를 EPL에서 많이볼수있는것입니다. 세계최고의리그에 진출을해서 활약을하고, 후배들이 세계최고의 리그에서 뛸수있게끔 발판을 마련한것이 업적이죠

 

 

 

 박지성선수에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라고하면 평발로 신화륾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평발을가진사람들은 일단 운동능력이떨어지고요. 경기장에서 많이뛰는 축구선수일경우 더더욱

불리한조건입니다. 최악의조건이죠. 하지만 박지성선수는 이모든것을 묵묵히 해냈고 이겨냇죠.

타고난 재능을가지고 태어나는것도 어려운데 박지성선수의 체격은 감히 유럽에서 성공할수있는 체격과는

정반대입니다.

177cm의 유럽에서는 왜소한키와 몸집이 크지도않고요 게다가 평발에 동양인입니다.

최악의조건을가지고 유럽에진출을해서 신화를만들어냈고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라는 명문클럽에서

8년째 뛰고있습니다. 자기보다 10cm,20cm 큰선수들앞에서 전혀 기죽지않고 뛰고있는거죠 아직도

그리고 박지성선수가 했던말중에서 감동적인 말이있었죠

"아버지, 전 맨체스터에서 유명한 스타가 되는걸 원하지 않아요.

10분을 뛰는것이라도 만족할 것이고, 그다음엔 20분, 그다음엔 전반전만 뛰는 선수라도 만족할겁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다 보면 저도 언젠가 반니스텔루이나 루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뛸 날이 오지 않겠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박지성선수는 축구선수중 정신적인면에있어서는 세계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과 생각하는것이 너무 올곧고 훌륭한 선수이지요.

박지성선수는 위에말처럼 자기는 경기의 주연,조연에 신경안쓰고 자기가 하는일을 묵묵히 해내는 스타일입니다. 아무말하지않고 자기가 할일만 열심히 하죠

그래서 박지성선수가 경기하는모습을보면 그렇게 화려하지는않지만 정말 열심히뛰는걸 느낄수있고 그렇게 잘하는거같지않은데 경기가끝나고 기억에 남는선수라는겁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돋보이고 남에게 화려하게 보이고싶은 욕심이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선수는 이런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맡은일만 충실히했다는거죠.

축구선수를예로들자면 누구나 자기가골을넣고싶고, 자기가 득점왕이 되고 싶을겁니다

하지만박지성선수는 겸손하고 이타적인자세로 경기에 항상임했고, 우리에게 감동을 준것입니다.

우리에게 화려하고 환상적인 축구플레이로 감동을준것이 아니고

최선을다하고 열심히하는 축구플레이로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죠.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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