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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 혼수문화의 문제점 및 바람직한 혼수문화 또는 결혼 절차나 혼수준비에서 비용을 젛약할 수 있는 방법!!!
비공개 조회수 13,919 작성일2012.10.26

 안녕하세요. 제가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데 인터넷에 별로 얻어갈게 없어서요.

 

그래서 지식인들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혼수문화의 문제점 및 바람직한 혼수문화 또는 결혼 절차나 혼수준비에서 비용을 젛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등학교 1학년의 수준으로 너무 길게 말고 그렇다고 너무 짧게도 아닌 적절하게 정리해서 답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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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조림은 아람농산
절대신
연애, 결혼 1위, 사람과 그룹 5위, 창원시 1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저는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데요.

요즘 지나친 혼수나 예단으로 문제점을 계속 심층취재하는 기사가 있어서

학생에게 참고가 될만한 내용을 답변으로 남겨 봅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

거래로 변질되는 결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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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사지법은 혼숫감이 적다며 부인과 장모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대병원 의사 박모(30)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 피고인은 지난해 3월 하모(23)씨와 중매결혼하면서 전세아파트 등 6500만원 상당의 혼숫감을 받았으나 '장인이 아파트를 안 사준다'며 하씨를 때리고 장모의 멱살을 잡아 구속됐다.'

1989년 9월 27일 본지 사회면에 실린 기사다. 집값과 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이처럼 과거에도 있었으나 판사·검사·변호사·의사 등 일부의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모든 계층이 고통을 받게 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이며, 갈수록 더 심해지는 추세라고 가정문제 상담자들은 입을 모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성애 HD가족클리닉 대표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한국·중국·일본·인도·서구의 결혼 관련 사료(史料)를 분석해보니, 동서고금을 통틀어 예단 갈등이 심했던 사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 했다. 잉여와 격차다.

가령 한국은 1990년대 초반 '혼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집값·예단 갈등이 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호황이 정점에 달하고, 서울 강남에 과소비하며 흥청거리는 '오렌지족'이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조선일보도 1990년 '한국병(病)'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사회문제를 진단하면서 혼수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뤘다. 그래도 당시는 일부 계층에 국한된 이슈였다.

최 대표는 "국가 전체가 너나없이 먹고살기 힘들 때는 오히려 혼수 갈등이 줄어든다"고 했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 직후 몇 년 동안은 집값과 예단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사태가 복잡해졌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좋아졌지만 계층 간 격차는 전보다 더 벌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갑자기 자산이 몇 배 불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갈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잉여와 격차가 동시에 생겨나면서, 다시 한 번 집값과 예단을 둘러싸고 갈등이 극심해졌다.

최 대표는 "사회는 풍요롭지만 계층 간 차이는 크고, 그런 차이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우니 '혼인을 통해 격차를 넘어보자'는 심리가 생긴다"고 했다. 일종의 '거래'로 변질되고 있는 우리나라 혼례문화의 바탕에는 이런 우리 사회 격차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ㅣ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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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아닌 '결혼'을 준비하라(두상달 ㈔가정문화원 이사장)
 
결혼을 앞둔 많은 사람이 결혼식장이며 혼수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도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결혼을 위해 준비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식장과 하객 접대 비용도 고민스럽고 신혼집 마련도 쉽지 않다. 특히 혼수·예단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를 놓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적당히 알아서 해오라는 말에서도 '적당히'라는 말의 모호함에 힘들어하고, 결혼 뒤까지 갈등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혼수는 한 가정을 이루는 데 따라오는 부록일 뿐이다. 부록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그 부록에 욕심을 부리다 사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제다. 호화로운 혼수나 결혼식이 행복한 결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기적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결혼식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가. 또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식은 얼마나 호화찬란했던가. 과연 그들이 행복했나? '어차피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 폼 나게 치러야지'하는 심리에 예식업자들이 호화 결혼식을 부추기기도 한다. 남들 따라 하려니 노후 대비 적금까지 헐거나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혼수'문제로 갈등하며 허우적대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파혼하기도 한다. 우리는 결혼식 한 번에 너무 많은 심적·물적 낭비를 하고 있다. 아무리 호화로운 결혼식이라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난다. 신혼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으로 끝나는 결혼식 준비가 아니라 평생 살아갈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서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부부다. 때로는 애증의 경계선을 넘나들기도 해야 한다. 부부란 계속해서 낭만의 열차 위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갈등한다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종합 예술이다. 그래서 소통과 대화의 기술도 배워야 한다. 두 사람이 2인3각 경기로 평생 살아가는 지혜를 준비해야만 한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건전한 결혼 예비 교육기관도 많이 있다. 바로 결혼 면허증을 따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사치스러운 결혼식장이나 아파트 평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조촐하더라도 정신적 혼수를 풍성하게 장만한 준비된 결혼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예비 부부들이여! 결혼식(wedding) 준비가 아니라 평생 같이 살아 갈 결혼(marriage)을 준비하라.
 
출처: 조선일보
 
# '모두가 괴로운 한국病' 결혼예단 없애자
 
신혼부부 24%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위기 겪어"… 35%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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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박승준(가명·37)·이혜미(가명·35)씨는 작년 6월 예식장 예약하고 청첩장까지 다 찍어놓은 상태에서 결혼식 한 달 전에 파혼했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친구 소개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가 되자 사사건건 충돌했다.

당장 신혼집 문제에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저축으론 모자라 예비 신랑 부모가 1억원을 줬다. 애써 마련한 돈이지만 예비 신부 부모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는 사람 딸은 집 사오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다음은 예단(禮緞) 차례였다. 예비 신부 부모가 비용을 대서 양가 어머니와 예비부부가 270만원어치 한복을 맞췄다. 190만원짜리 예비 신랑 양복도 샀다. 이와 별도로 현금 500만원에 이불·반상기·은수저를 곁들여 예비 신랑댁에 보냈다. 여기서 갈등이 커졌다.

예비 신랑 부모가 화를 냈다. 예비 시어머니가 예비 며느리를 불러 "현금의 절반을 (신부 옷·화장품 값으로) 되돌려 주는 게 관행이라던데, 너희 집에서 보낸 액수(500만원)가 워낙 적어 한 푼도 못 돌려주겠다"고 했다. 양가는 예식장 대신 법정에서 만났다. 예비 신부가 "결혼이 깨져 상처받았으니 5000만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둘 다 잘못해서 깨진 결혼이니 그럴 필요 없다"고 기각했다.

예물과 예단은 서로 잘 살아보자고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걸 주고받다 오히려 결혼에 금이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선일보여성가족부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3년 내에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한 결과 예비 사돈끼리 벌이는 '예단 전쟁'은 이미 위험수위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조사 결과 신혼부부들이 전체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고 답한 항목 1위가 예물·예단이었다(35.3%).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순간을 겪었다는 사람이 네 쌍 중 한 쌍(23.9%)에 달했다. 전체 열 쌍 중 한 쌍(9.9%)은 "예물·예단 갈등 때문에 이혼·파혼·결혼 연기 등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물·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서민 가정(22.1%)보다 중산층 가정(24.8%)에서, 중산층 가정보다 유복한 가정(28.6%)에서 더욱 많았다. 정말 돈이 없어서 생기는 갈등이 아니라 잘못된 결혼문화 때문에 불거지는 '한국 병(病)'이라는 얘기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요즘 결혼이 거의 '돈 놓고 돈 먹기' 수준으로 전락했다"면서 "잘못된 혼례문화를 고치려면 예단을 아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
조선 시대에는 양가 형편에 따라 관혼상제 치러
최근 웨딩 업계가 만들어낸 폐단이 관례로 둔갑
사회 변화에 맞춰 집값 분담하는 게 전통에 부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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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마련하는 데 네가 보탠 게 뭐 있어? 내 집이니까 네가 나가! 몸만 나가!"

서울 서초동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온 신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신랑에게 들었다는 폭언이다. '집은 남자가 해온다'는 통념에 밀려 무리해서 신혼집을 산 신랑이 '아내가 해온 혼수와 예단이 성에 안 찬다'는 이유로 폭발한 사례였다. 소송을 담당한 A(48) 변호사는 "소형 주택 집값이 뛰면서 최근 수년간 이런 사건이 부쩍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이 소송의 내막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갈등의 뿌리에는 '집은 원래 남자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관행과 인식이 있다. 언제부터 이런 관행이 생긴 것일까? 정말로 우리 조상은 남자가 집을 책임지면서 살아왔을까? 전문가들은 "유교 경전은 물론 어떤 역사책에도 그런 규범은 없다"고 했다.
고구려부터 조선 전기(前期)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결혼식을 치른 상당 기간 처가살이를 했다. 처가에 들어가 살거나 장인·장모가 처가 근처에 마련해준 집에서 지내며 아이들이 열 살 안팎 될 때까지 키운 뒤 온 가족이 그동안 사용한 세간을 지니고 남편 집으로 돌아갔다. 조선 전기까지는 딸에게도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했기 때문에 신부의 부모가 넉넉하게 살 경우에는 딸 부부가 시댁으로 돌아갈 때 논밭을 떼어주고 하인을 딸려 보냈다. 결혼 문화 전문가인 조희선 성균관대 교수는 "부덕(婦德)의 화신인 신사임당도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가부장제가 강화됐지만 정부가 아무리 '신부 집 대신 신랑 집에서 식을 올리라'고 해도 백성이 듣지 않았다. 결국 혼례식 자체는 예전처럼 신부 집에서 치르되, 식만 치르고 곧 시댁에 들어가는 쪽으로 풍습이 변했다. 장남 부부는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살고, 차남 이하는 결혼해서 몇년간 부모와 함께 살다가 집성촌 안에 작은 집을 지어서 분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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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확 바뀐 게 1960~70년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자식은 도시에서 직장 다니게 됐다. 부모와 자식이 한 도시에 살더라도 결혼식 올린 뒤 일정 기간 부모와 함께 살다가 분가하는 풍속이 생겼다. 이후 IMF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부모·자식 모두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따로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문제는 모든 게 변했는데 '신혼집 마련은 남자 몫'이라는 인식만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결혼 문화 전문가인 박혜인 계명대 교수는 "유교의 영향이 막강했던 조선시대에도 '가가례(家家禮·집마다 예의범절이 다르다는 뜻)'라고 해서 양가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관혼상제를 치렀지 지금처럼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대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신랑이 신혼집을 마련하고, 신부가 그 답례로 현금(집값 10~20%)과 각종 명품을 시댁에 보내는 게 마치 '공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웨딩업계가 만들어낸 폐단일 뿐 전통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조 교수도 "아들 가진 부모들이 사돈·며느리 눈치 보느라 또는 아들이 기(氣) 죽을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집값을 대주는데 아들 신혼집 마련해주는 건 남자의 체면이나 집안의 '뼈대'와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사회 변화에 맞춰 양가가 형편에 맞게 집값을 분담하는 게 우리 전통에도 맞는다는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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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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