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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슬람교에 대해서...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5,238 작성일2007.04.30

저는 이슬람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말 이슬람교 여자들은 차도르같은걸 꼭 쓰고 다녀야 하는건가요?

 

이슬람교에서 여성에게 금기시하는 뭐 그런거좀 갈쳐주세요

 

이슬람교 창시자나 역사같은거 말고요

 

실제 생활에 대한것이 궁금한 겁니다.

 

터키에 이슬람 교도가 많다고 들었는데

 

터키 여자들은 차도르 같은거 안쓴다고 들었습니다.

 

이슬라교 중에서도 시아파의 생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슬람 교도 들이 많은가요?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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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학과 아랍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간단하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질문자님께서 쓰신 이슬람교는 '틀린용어'입니다. 이슬람자체가 아랍어 4형 아슬라마 동사의 동명사형으로 '종교'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이라고 하셔야 옳은 종교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너무 여성억압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부분 외에 여성을 존중하는 양면성을 가진 문화 또한 이슬람입니다. 이를 유념해 주시고, 일단 각설하고,

 

1. 첫번째질문:

 예, 이슬람 여성들은 옛날 우리나라의 '칠거지악'처럼 여성을 억압했던 사례처럼(유교와 이슬람이 여성의 억압면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아랍어과가 있는 외대나 명지대 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다음은 글은 조희선 교수(명지대)님의 연구발표 부분입니다.

무슬림 여성의 위치와 무슬림 여성관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또 오늘날에 와서는 각 이슬람 국가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종교보다는 국가의 이념, 경제 발달의 수준, 사회계층의 분포도, 각 국의 역사적 상황 등에 의해 많이 좌우되고 있다.


@.이슬람과 여성의 지위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중동의 종교였던 유대교와 기독교처럼, 확실히 가부장적인 사회적 배경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무슬림과 서구 학자들도 이슬람이 여성의 지위를 신학적, 종교법적으로 개혁, 진보시켰다는 데 동의한다. 무슬림 신학자들은 서구 여성들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인식과 비교하여, 이슬람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높은 지위, 그리고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이 가지는 계속적인 존엄과 고결성을 높이 찬양한다. 예를 들어, 상속권과 소유권이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상속 분의 반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상속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도 있는 엄격한 부계사회에서 이것은 실질적인 변경이었다. 유대교,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남성과 여성을 영적으로 평등하다고 본다. 하지만 남성은 여성에 대한 권위를 수여 받았는데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가정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으며, 법적 기반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부양을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로부터 받는다.

소유권의 확장에 더하여 이슬람은 혁신적인 혼납금(mahr)체계의 개혁을 이루어 여성의 법적 권리를 구현했다. 이것은 여성을 재정적으로 보호하는 주요 자원이 되며 이혼을 억제하는 힘을 가진다. 이혼 시에 여성에 대한 이 법적 채무는 완전히 지급되어야 한다. 샤리아에서 자식들에 대한 보호는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또한 엄격한 부계 규칙의 변용이며, 여성의 가족에게 신부값을 주어야 여성의 출산권이 아버지의 가족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성이 베일을 쓰는 것이나 머리를 가리는 것은 중동지역에서 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문화적 특색으로 무슬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과 유대인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사이 폭넓은 베일 쓰기의 확산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종교적 정서를 표현할 수 있으며, 식민 시대와 서구 문화 지배의 영향하에서 평가 절하된 문화-종교적 유산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집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도시지역 노동계급 여성의 방어수단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이슬람 정부와 사회를 세우거나 재건하는 조직적 운동에 참여하는 이슬람주의 여성 활동가의 정치적 상징이 될 수 있다.

@. 아랍사회와 여성의 지위
지난 14세기 동안 아랍사회는 이슬람이 발전과 더불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얽혀져 왔다. “아랍”이라는 말이 공통의 언어와 문화적 유산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아랍세계 모두를 `아랍'이라는 공동된 개념으로는 묶기는 어렵다.

17세기 오스만 아나톨리아에서 여성의 이슬람 법정 이용에 대한 연구는 여성이 활동적으로 공공생활에 참여하며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주저도 없이 법정을 이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과 샤리아 법정에 대한 현대의 연구에서 일관된 패턴을 살펴보면, 여성은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산문제를 해결하고 재산에 관한 일 처리를 위해 샤리아 법정에 선다. 당시 80퍼센트의 여성이 스스로 그들의 소송을 다루며, 단지 20퍼센트의 여성만이 일반적으로 남성 친족에게 대표권을 위임하였다고 전해진다.

전통적인 무슬림 법관인 푸까하fuqaha는 일관되게 여성의 법적 권리에 대해 보호하는 자세를 취한다. 10세기경 피임기구를 허용했다는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출산과 성적(性的) 이행(履行)(sexual fulfillment)이라는 여성의 기본권으로 당시의 법관들은 피임을 인정했다. 노예제도가 존속함에 따라 노예 여성들은 자유여성과 같은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없었지만, 부인이 되거나 또는 오랜 하인생활을 하면 특별 유증(遺贈)의 절차를 통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히잡의 사용으로 여성들은 엄격한 남녀 격리의 관습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도시지역 중간계급에서 베일 쓰기와 같은 여성의 격리는 부와 지위의 표시이다. 오늘날에도 이슬람식 복장의 부활은 우선적으로 도시지역의 교육받은 중간계급의 현상이다.(요새는 스카프처럼 칼라 히잡이 인기를 얻는 편입니다.)

20세기에, 민족주의운동의 한 부분으로 모든 아랍 국가에서 실질적으로 여성운동이 일어났을 때, 여러 정치적 사회적 요구가 있었지만 그 안에 성적 격리는 으레 포함되지 않았다. 남성만을 위한 교육을 끝내고 여성의 교육을 증진하라는 요구는 계속되었지만, 남녀공학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가까운 친족을 제외한 남성으로부터 여성을 격리하는 것은 여성간 결속의 강한 판단기준이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생각해 볼 가치가 크다. 여성의 베일 쓰기와 격리는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정치적으로 무기화 되었다. 여성들이 정치적 문서나 무기를 프랑스 군대의 검색을 피해 옮겼던 것이다. 이란 여성은 1979년 이슬람 혁명과 뒤이은 몇 년 동안, 이슬람 공화국을 위한 대중 시위나 선전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적 참여자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성별 격리는 이중으로 복합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공공생활로부터 여성을 막아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들의 결속을 강화하여 의미 있는 공공의 일에 동원하는 것이다. 아랍-무슬림 사회는 이것을 여성에게 해로운 것으로 보지 않는다.

 

%. 그리고 아랍어에서는 물건명칭을 여성형으로 씁니다. 이슬람이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종교라서 여성 또한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인 '여학교'와 같은 단어들을 많이 없애는 것과는 달리 언어적으로는 남성, 여성의 구분을 아직까지 확실히 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코란에 나와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처와 첩들간의 관계는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같으면 사이가 안좋은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첩을 얻게 되면 첩에게 해주는 하룻밤, 그리고 예물 등을 본처에게도 똑같이 해주기 때문에 사이가 다른나라보다는 괜찮은 편이며 그렇게 해서 낳은 자식들 간의 사이도 좋은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2. 두번재 질문:

 터키는 2차대전이 끝나고 그 유명한 '케말 아타튀르크'란 터키민족주의의 지도자에 의해 '이슬람의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햇습니다.즉  현대화란 이름하에 말이죠.  하지만 언어개혁을 해도 현재 아랍어의 비율이 40%이상이고 이러한 히잡과 같은 이슬람의 문화적 잔재를 지우는 일도 진행시켜왔습니다. 즉 터키고유의 색을 되찾자는 것이죠. 그래서 터키가 계속 유럽연합에 들어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무슬림 국가이긴 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터키식의 무슬림이지 '아랍'이 아니란 개념으로 보시면 터키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왜 안쓰는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3. 세번째 질문:

 쉬아파는 과거의 페르시아 지역이자 현재의 이란에서 대다수의 신도가 있으며 이라크의 일부 사우디의 담맘지역, 그리고 다수 중동국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들은 수니파보다 종교적인 '감응성'이 뛰어나 가끔 다큐멘터리같은데서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채찍질한느 광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카르발라의 참극'의 후세인을  기념하기 위해 쉬아파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무언가 시위를 하면 항상 '대규모'로 합니다. 수니파가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가 성지라면 이들은 이라크의 나자프와 같은 지역들이 성지입니다. 기본적인 코란의 교리는 같지만(5주6신이나 하루에 다섯번 기도드리는 것같은 기본옵션) 이들의 종류도 많아서 대표적으로 12이맘파등이 있으며 수니파가 칼리프제에서 민주적 선출을 중시했다면 이들 쉬아파는 칼리파제에서 '혈통적 계승'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4. 네번째 질문:

 우리나라의 이슬람교는 현재 서울, 부산, 경기 광주, 안산, 안양, 전주, 제주, 포천, 김포,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등지에 성원 또는 이슬람 센터가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신자들의 대부분은 현재 우리나라에 살거나 여행 중인 외국인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입니다.
최근 이슬람권 국가 출신의 근로자와 사업가가 급격히 늘어 10만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한국인 신자도 있습니다.
그 수는 한국 이슬람 중앙회 자료에 의하면 약 3만 5천여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실제 활동하는 무슬림의 수는 그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한국인 신자의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70년대 중동 진출 붐을 타고 당시 진출사와 근로자를 중심으로 입교 교육을 받고 무슬림이 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동 경기가 침체되면서 대부분이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신앙 생활을 하는 무슬림의 수는 적은 상황입니다.

 

%. 특히 유의하실 점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코란을 해석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다인양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곡된것은 오히려 서구의 관점으로 해석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이에 대한 접근은 신중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님께선 다른 곳에 같은 질문들을 올려놓으셨더군요. 3개정도 답변이 있는데 기독교중심사고로 이슬람을 해석한 경우이거나 내용은 알아도 제대로 이해 못한 답변이 대부분입니다. 이의제기를 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요. 어쨌건 이슬람에 대해 ㅇ더 알고 싶으시다면 개인적으로 쪽지 보내주세요.

20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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