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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북한 정치
비공개 조회수 11,582 작성일2013.12.12
 북한 공산주의에여?
북한 정치를 잘 모르겠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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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혜장철학관
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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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공포정치라고  보아야 합니다. 

 

 

 김정은, 4년간 ‘쩐의 전쟁’ 끝냈다

 

기사입력 2013-12-11 03:00:00

기사수정 2013-12-11 08:50:24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얻은 것은 권력의 공고화만이 아니다.
후계자 내정 때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의 권력 장악 과정은
‘자금의 장악’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성택 숙청을 통해 북한의 모든 자금과 이권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돌게 됐다.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 붕괴를 계기로 시작된
 ‘쩐(錢)의 춘추전국시대’는
2013년 김정은의 천하통일로 막을 내리게 된 셈이다.

○ 심복 내세워 빼앗은 자금줄
2008년 여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깨어나자마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군부 장악부터 맡겼다.
당시 북한에는 김정일의 자금인
‘당 자금’과 노동당 작전부, 군부로 대변되는 3개의 큰 자금원이 존재했다.
 
김정은은 이 가운데 작전부 자금줄을 챙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해외 공작을 위해 수많은 해외 기지를 두고 있던 작전부는 마약과 위조지폐,
무기 밀매로 막대한 불법 외화를 벌어들였다.
 
1억6000만 달러(약 1682억 원)어치의 마약이 적발돼
2006년 호주에서 억류된 ‘봉수호’ 사건도 작전부가 벌인 일이었다.

김정은은 노동당 작전부와 조사부(35실),
군 정찰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정찰총국장에 심복인 김영철 상장을 임명했다.
자연히 작전부 자금은 김정은의 손에 들어왔고
실세였던 오극렬 전 작전부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중앙당 38호, 39호실 등
전통적인 김정일 비자금은 자연스럽게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김정은의 두 번째 칼날은 군부로 향했다.
2012년 4월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뒤 군부의 모든 자금줄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정일은 군부가 스스로 외화를 벌어 군을 유지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후 군부는 셀 수 없이 많은 ‘
기지’라는 이름의 외화벌이 회사를 차려 수산물과 광물자원 등을 외국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군단급 수산기지에는 50여 척의 선박이 소속돼 있을 정도였다.
 
최룡해는 총정치국 산하에 있는 모든 회사를 김정은에게 바쳐 솔선수범을 보였다.

○ 숙청으로 챙긴 장성택의 자금줄
같은 기간 김정은의 후견인이던
장성택도 권력을 이용해 각종 이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수도 건설을 책임진
장성택은 자금 마련 명목으로 건설자재 회사,
광물자원 회사 등에 심복을 심었다.
수출과 수입 시세 조작만으로도 얼마든지 큰돈을 빼돌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장성택 라인은 북한의 석유사업도 손에 넣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북한에서 석유 수입은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
처형된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석유사업 책임자였다.
그는
장성택의 핵심 비자금 관리인이기도 했다.
 
장성택은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매년 수억 달러의 수익이 창출되는
휴대전화 사업도 손에 넣었다.
행정부 산하 보위부와 보안서의 알짜 이권사업도 장 씨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장성택은 수십억 달러를 주무를 수 있는
건설,
통신,
광업,
해외자금 유치, 대중(對中) 교역 등 각종 이권사업을 손에 넣었다.
사업 명목은 당 자금이나 경제건설 자금 충당이었지만
실제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장성택의 심복들이었다.

장성택 숙청으로 그가 키워 온 이권사업도 일거에 김정은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이 발표한 장성택의 죄목에는 “
장성택 일당은 교묘한 방법으로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주요한 몫을 담당한 부문과 단위들을 걷어쥐고 내각을 비롯한
경제 지도기관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국가재정 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라는 내용도 있다.
이번 숙청의 중요한 이유가
장성택 라인이 차지한 이권 때문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장성택 측근 핵개발 핵심 문서 들고 탈출”
[北 장성택 숙청 후폭풍]北 “장성택, 적대세력에 편승” 韓美에 화살
[北 장성택 숙청 후폭풍]“張 라인이 주도한 對中경협 위축”
 
 
 

김정일 '

그 겨울의 찻집'

열창할 때 옆자리 지킨 여인은 …

 
 
[중앙일보]
 
 
입력 2013.12.07 00:50
수정 2013.12.07 09:13
 

평양의 로열 패밀리, 김정일가의 여인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해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에서 돌고래쇼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부인 이설주, 김정은,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 [중앙포토]


평양에서 고속도로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묘향산.
서울 손님을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뒤로 40대 중반의 여성이 따랐다.
 
김정일은 웃음을 띠며 “
현 회장,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과 딸 정지이 현대U&I 상무를 향해서다.
 
김정일 직접 면담을 요청한 현 회장은 열흘 기다림 끝에 만났다.
중단상태인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을 논의하려는 자리였다.

와인을 곁들인 오찬을 함께한 김정일은 정 상무의 잠옷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
밴드 들어오라 그러라우”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동반 여성과 모두 11곡의 노래를 불렀다.
놀랍게도 그 가운데 3곡은 남한 가요였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도 그중 하나다.
김정일 옆을 지킨 여인이 누군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현 회장은 사실상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 역할을 하는 김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09년 8월 16일 낮 김정일의 묘향산 특각(전용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한 정권에서 최고지도자의 여인들은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다.
은둔을 강요받은 것이다.
 
기술서기(비서) 출신인 김옥은 1990년대 초반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그의 여자가 된 이후 그녀의 모습은 북한 화보 등에서 지워졌다.
 
김정일은 마지막 중국행이 된
2011년 5월 베이징 방문 때 김옥과 동행했다.
 
전용 메르세데스벤츠의 퍼스트레이디가 앉는 자리에 김옥을 자리토록 했다.
해외언론의 관심은 그녀에게 집중됐다.
 
이를 두고 몇 달 뒤 숨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김정일이 김옥에게 이런 기회를 줌으로써
평생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했던 미안함을 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정일과 정혼한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김영숙은 아예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정일의 첫 여자인 성혜림도
시아버지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녀는 잘나가던 영화배우였다.
김정일은 60년대 말 친구의 형수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켜 동거에 들어갔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절대권력을 물려받게 될 후계자 김정일의 사랑은 불같았다.
71년 5월 첫 아들 정남을 낳자 김정일은 새벽길을 벤츠로 달려와 들뜬 목소리로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고 알렸다는 게 언니 혜랑(서방으로 망명)씨의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식었다.
결국 성혜림은 우울증과 심장병에 시달리다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김정일 등장 후 계모 김성애 사라져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는 28년간 김정일과 살았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이던 10년 연하의 그녀를 김정일은 말년까지 챙겼다.
유선암 치료를 위해 프랑스에 머물던 그녀가 숨지자 특별기를 보내 운구했고 평양 대성산에 안장했다.
 
그런데도 아들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이후에야 세상에 모습이 알려졌다.
그것도 당간부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된 기록영화를 통해서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함께 방북했지만 김 국방위원장은 홀로 나왔다.

김일성 주석도 그랬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49년 숨진 이후 타자수 출신 김성애를 후처로 맞았다.
 
그녀를 두고 ‘
평양 치맛바람’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권세를 부리자 제동을 걸었다.
80년대 들어 김정일이 후계 권력을 굳혀가자 계모 김성애는 전면에서 사라졌고,
 
그 소생인 김평일은 외국 대사로 나가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의 이른바 ‘곁가지’ 쳐내기였다.

그런데 김정일가(家)의 오랜 금기가 깨졌다.
‘평양판 신데렐라’ 이설주의 등장이 그것이다.
 
지난해 7월 김정은은 그녀를 동반하고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에 나왔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부인 이설주 동지’라고 불렀다.
파격은 이어졌다.
 
김정은의 팔을 부여잡고 팝콘을 먹는 이설주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외부세계에도 충격이었다.
샤넬풍 패션에 크리스천디오르 클러치백을 든 평양 안방권력의 새 사모님을 두고 ‘
청담동 며느리 패션’이란 말까지 나왔다.

김정은의 여동생 여정도 주목거리다.
2년 전 김정일 장례식 때 오빠 뒤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확 달라졌다.
지난해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때 나온 김여정은 천방지축이었다.
 
김경희를 비롯한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이
김정은을 맞이하느라 도열한 상황에서 행사장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다.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녀가 김정은의 이미지 메이킹과 선전·선동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11월에는 김정은과 함께 말을 타는 장면이 공개됐다.
같은 혈통임을 과시한 것이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는 북한 권력의 키를 잡고 있는 여걸로 간주된다.
최근 불거진 남편 장성택의 실각설로 더욱 부각됐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반당(反黨)혐의로 공개 총살했다는 게
국가정보원이 파악한 내용이다.
 
극단적인 처벌 강도로 볼 때 장성택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과 일정 기간 후
복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권력 내에서 그녀의 서열이 어떻게 정리되고
김정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경희 부부와 함께 ‘
후견 3인방’으로 꼽혀온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도 김경희를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른바 ‘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김일성 혈족인 김경희의 출신성분을 항일 빨치산 출신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란 신분증으로 압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녀는 불꽃 같은 러브스토리를 남겼다.
동갑내기에 같은 모스크바 유학 출신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는 결혼을 원했지만 김일성의 반대에 부닥쳤다.
 
원산경제대 교수로 쫓겨난 장성택을 만나러 툭하면 벤츠 승용차를 몰았다.
김일성도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26세이던 72년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김경희는 알코올 중독 등에 시달렸고 별거설까지 나왔다.
 
2006년에는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딸 금송이 自殺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에 빠진 북한 유학생과의 사이를 부모가 반대하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프랑스 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최고 권력자와 스캔들나면 공개처형
절대권력자들의 곁에는 많은 여인이 스쳐갔다.
 
단숨에 절대권력자를 사로잡아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지만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효기간은 ‘사랑이 식을 때까지’였다.
 
이후 그녀들을 기다린 건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지거나 숙청 등 비참한 결말이었다.
인민배우 우인희 사건은 대표적인 경우다.

80년 어느 겨울날 평양 교외의 한 사격장에는 북한의 영화배우·감독과 주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잠시 뒤 미모의 여인이 끌려나와 기둥에 묶여졌다.
 
얼굴에는 하얀 용수가 씌워졌다.
여자는 최후를 예감한 듯 울부짖었지만 스피커 방송에 묻혀버렸다.
“인민배우 우인희는 부화(남녀 간 부적절한 관계를 의미하는 북한식 표현) 방탕죄를 범했으므로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
 
곧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렸고 축 늘어진 여인의 몸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정적이 흘렀다.

60~70년대 최고의 배우 우인희는 북한체제에서 결코 용인받기 힘든
자유분방함으로 숱한 염문을 뿌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기록됐다.
 
스캔들로 인해 비판대에 섰을 때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
당신도 나한테 유혹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느냐”며 맞받아쳤다.
미운 털이 박혀 배우에서 촬영소 보일러실 화부로 전락하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 유호선과 결혼한 후에도 재일교포 청년과 깊이 사귀었다.
 
하루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잠들었고,
새벽 청년은 질식사하고 우인희는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공개처형은 사건 조사과정에서 그녀가
김정일을 비롯한 고위층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납북됐다 극적으로 귀환한 배우 최은희씨는 “
북한 체류 때 처음 우인희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김정일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던 외교관 출신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이 부화를 은폐하려 멀쩡한 여배우를 총살시킨 사건”이라고 전했다.

지난가을 평양에서는 33년 전의 일이 되풀이된 듯한 일이 벌어졌다.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9명의 젊은 남녀 음악인들이 공개처형 당했다.
 
김정일 시대 최고의 주가를 올린 악단이다.
성추문과 부르주아적 행동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유럽 공연 중 단원끼리 문란한 관계를 맺었다는 전언과 돈벌이를 위해 포르노를 찍어
중국으로 팔아넘겼다는 설이 엇갈리지만 추문설이 직접적 이유가 됐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이설주가 추문설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단원들이 “
은하수악단 출신인 이설주도 예전엔 우리처럼 놀았다”는 증언을 했다는 얘기였다.
 
때마침 이설주의 공개활동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이를 의식한 듯 이설주는 잠시 공개석상에 섰지만 최근 50일 넘게 활동이 끊겼다.

대북 정보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향후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가름할 변수로 김경희의 건강을 꼽는다.
 
최근 들어 몰라보게 수척해진 상태고,
공개활동도 뜸해졌다.
 
지난해 9월 지병 치료차 싱가포르 등을 찾았던 그녀는
최근에는 진료를 위한 미국 방문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부인들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곧 출간될

『김정일가의 여인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영종 기자

 
관련기사
▶ 김정일의 첫사랑 성혜림은 누구일까

 

 

 

[北 로열패밀리]

 

 

"김정일, 유부녀 성혜림 이혼시키고 동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12.05 09:28
수정 2013.12.07 09:13
 
 

김정일의 첫사랑 성혜림은 누구일까.

4일 방송된 JTBC '뉴스콘서트'에서는

북한 장성택 조선노동장 중앙위원회 부장의 실각설과 관련해

김정은의 가족사와 형제들의 근황에 대해 짚었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즉 김정은의 '

배 다른 형제'인 김정남은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2001년 밀입국 사건 등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며 아버지 눈밖에 났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는 이날 방송에서 "

성혜림은 김정일이 지도원 시절일 때 첫사랑에 빠진 여성"이라며 "

프놈펜 국제영화제에도 나갈 정도로 유명한 배우였다.

 

결혼한 유부녀였는데 강제로 이혼시키고 동거를 한것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과 달리 김정은과 김정철,

김여정은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온라인 중앙일보·JTBC 방송뉴스팀

 

 

 장성택 숙청 결정한
‘삼지연 회동’
 멤버들, 北 권력 핵심으로 부상
 
 
입력:2013.12.12 01:31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 이후의 북한 신 권부(權府) 핵심 세력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주도 하에 이뤄진 이른바

‘삼지연(三池淵) 회동’ 멤버가 중심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동 참석자 중에는 특히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조직지도부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이들이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김 제1위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백두산 인근 양강도 삼지연군(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백두산지구 체육촌,

삼지연혁명전적지,

인민군 항공·반항공군 제991군부대 등을 찾았다.

 

백두산 줄기와 연결된 호수인 삼지연은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시절 주요 활동무대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백두산 인근을 찾은 것이 처음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

백두산 혈통’이 신성시되고 백두산은 주체혁명의 본산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김 제1위원장이 굳이 겨울철에 이곳을 찾은 것은 단순한 현지지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 제1위원장이 삼지연의 모처에서 측근들과 회의를 갖고 ‘

곁가지’에 불과한 장 부위원장 숙청을 결심하고

향후 대책 및 당 운영 방향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김 제1위원장의 삼지연군 방문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한광상 재정경리부장,

박태성 당 중앙위 부부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 당 중앙위 부부장 등 이른바 ‘포스트 장성택’의 실세들이 대거 포함됐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들어있다.

 

또 같은 날 삼지연 군부대 방문에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황병서 부부장이 동행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

김 제1위원장은 삼지연에서 핵심 측근들과

장성택 실각에 따른 업무 공백을 메우고,

권한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등을 논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자에서 ‘

길이 빛나라 삼지연의 강행군길이여’라는 기사를 통해

장 부위원장을 숙청한 김 제1위원장의 결단이 삼지연 방문에서 이뤄졌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신문은 1960년대 ‘

갑산파’

숙청 사건을 상기한 뒤 “

이번 삼지연 방문에서 원수님(김정은)의

위대한 심장에서 뿜어진 것도 바로 이런 철석의 신념,

의지”라며

“단순한 현지지도가 아니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북한·한반도
 

[북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의 ‘삼지연 보좌단’, 신 실세로 주목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ㆍ노동신문 “혁명에는 혈통이 있다”…
   장성택 겨냥 관측
ㆍ황병서·박태성·마원춘 부부장 등 수행빈도 부쩍 늘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지난달 양강도 삼지연군 시찰에 동행한 인물들이 ‘
신(新) 실세’로 주목받고 있다.

삼지연은 북한이 성역화한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적 공간이다.
시찰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실각을 전후한 예민한 시점에 이뤄졌다.
이 시찰에서
장 부위원장 숙청 및 후속 조치에 대한 중요 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더불어 현지 시찰에 동행한 인물들이
김정은 시대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11일자 2면에 ‘길이 빛나라 삼지연의 강행군길이여’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그리움의 12월을 앞두고 백두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삼지연군을 찾으신 소식은 지금도 온 나라를 끝없이 격동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양강도 삼지연 혁명전적지를 찾아

삼지연 연대 기념비와 혁명전적지 답사 숙영소 등을 돌아봤다고 노동신문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신실세로 떠오른 황광상(왼쪽),

황병서(왼쪽에서 두번째),

김양건(김 제1비서 바로 뒤 왼쪽),

홍영칠(오른쪽),

김원홍(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김 제1비서를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확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 제1비서는 11월 말쯤 평양을 떠나
삼지연군 및 혁명전적지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소식은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를 통해 지난달 30일 보도됐다.
김 제1비서는 항공절(11월29일)을 맞아
지연비행장 주변 주둔 부대로 알려진 항공 및 반항공군 제991군부대도 방문했다.

삼지연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을 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도 체제와 관련해선 김 주석의 혈족, ‘백두혈통’ 논리와 연결된 장소다.
 
노동신문은 김 제1비서의 삼지연 방문을 “강행군길”이라고 묘사하면서 “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에는 자기의 근본이 있고 혈통이 있다”고 보도했다.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으로 숙청된
장 부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숙청된 장 부위원장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또 김 제1비서의 “
백두산지구에로의 첫 답사행군”이라고 전했다.
 
그 시기가 산을 타기 쉽지 않은 초겨울이라는 점에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자취를 밟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삼지연 방문에 대해 “
조선혁명의 행군길을 이어가려는 철의 신념의 분출이었으며
혁명의 배신자들에게 내리는 무서운 철추였다”고 보도했다.
 
‘혁명의 배신자에게 내리는 무서운 철추’라는 표현에서 이번 방문이
‘장성택 일당’의 숙청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제1비서는 지난달 30일 삼지연 혁명전적지를 돌아보며 “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결심과 의지가 더욱 굳세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백두산지구 방문을 수행한 인물들이
김정은 시대 새로운 실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 제1비서의 삼지연군과 혁명전적지 현지지도에 동행한 인물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 비서·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박태성 중앙위 부부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
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추정),
마원춘 중앙위 부부장 등이다.



김양건 당 비서 같은 원로그룹 인사도 눈에 띄지만
황병서·
박태성·
마원춘 부부장 등은 김정은 시대 들어 수행빈도가 부쩍 늘어난 신진 세력이다.
정부가 올해 김 제1비서 수행 인물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으로
황 부부장은 53회로 2위를 기록했고
박태성 49회(4위),
마원춘 43회(5위) 등으로 나타났다.
김원홍 부장은 ‘장성택 숙청’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삼지연 인근 제991군부대 방문에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영철 육군대장,
황병서 당 부부장이 동행했다.
 
군부에서는 건재를 과시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필두로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등이 신진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 종합대학은 3개교

북한종합대학

김일성종합대학, (의대 평양의전)

김책공업종합대학,

고려성균관대학

 

북한 중앙(국립)대학

  원산농업대학 (의대 원산의전)

  김일성방송대학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사리원고려약학대학

  신의주경공업대학

  청진광산금속대학

  함흥수리동력대학

  평양과학기술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지방대학

  청진교육대학

  평양인쇄공업대학

  평양기계대학

  평양농업대학

 

군사대학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육사)

  강건종합군관학교 

  김정숙해군대학       (해사)

  김정일정치군사대학 - 공작원 양성, 김현희 출신교

  김책공군대학          (공사)

  김철주포병종합군관학교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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