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민시대, 왜 청년들은 ‘의미 없음’에 빠졌나
지금은 무민시대, 왜 청년들은 ‘의미 없음’에 빠졌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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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왜 요즘 청년들은 의미 없는 것들을 볼까. 액체괴물, 고양이 관찰 영상, ASMR 등 무의미한 영상들이 유튜브와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액체괴물 동영상은 액체괴물의 소리와 모습밖에 나오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29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초등학생, 청년 할 것 없이 액체괴물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와 SNS에 올리고 공유하고 있다.

“예쁘죠?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돼요” 한 유튜버가 감탄을 하며 액체괴물을 냄비에서 꺼내 손으로 주물럭거리다가 책상 위에 살짝 힘을 줘 던진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난다. 만질 때 꾸덕꾸덕한 느낌과 특유의 소리가 액체 괴물의 매력이란다.

의미 없는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인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도 유행이다.

ASMR로 인기몰이 중인 남성 유튜버 ‘우노’는 ASMR 기계로 시청자에게 귀지를 파내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 영상은 59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동일한 소리를 들려주는 여성 유튜버 ‘DANA'의 동영상은 6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마시멜로를 먹는 소리, 화장솜이나 소시지를 만질 때 나는 뽀득뽀득 소리를 들려주는 동영상들이 인기다.

고양이가 하는 의미 없는 행동을 가만히 관찰하는 고양이 영상도 유행이다. ‘개성 넘치는 일곱 고양이와 만렙 집사’의 일상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크림히어로즈’는 구독자수가 69만명이 넘었다. ‘크림히어로즈’의 동영상 중 스코티쉬폴드 종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장면을 담은 ‘순진무구 아기 고양이 목욕하기’ 동영상은 41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왜 이런 걸 보니? 우린 ‘무민 세대’니까

“아무 의미 없이 보고 있으면 긴장도 풀리고 걱정도 사라져요. 영상이 끝나면 다시 세상 스트레스들이 돌아온다는 게 문제지만”

왜 이런 의미 없는 영상을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직장인 이진욱(28)씨의 대답이다. 그는 초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까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지쳐있다고 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뭔가를 하려 해도 그럴 수 있는 체력이나 정신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휴식시간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힐링’ 할 수 있는 단순하고 의미 없는 영상들을 찾아본다고 했다.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취준생 이준석(28)씨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ASMR을 시청하게 됐다. 잠을 좀 청하려고 자기 전에 비오는 소리, 파도소리 같은 편안한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하루에 한 편은 꼭 봐야 해요” 학교가 1시에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직행해 7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초등학생 김 모 양은 학원 버스 안에서 액체 괴물 영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재미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무민 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없다는 뜻의 무(無)와 영어로 의미를 일컫는 민(mean)의 합성어로, 경쟁에 지쳐 홀가분한 인생을 살기 위해 ‘무자극, 무맥락, 무위휴식’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무민 세대’ 양산하는 각박한 사회

사회학자 김찬호는 그의 책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 사회학』에서 사람들이 어떤 작품이나 콘텐츠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며 “감정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띤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지고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삶의 바탕이다. (중략)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마음의 습관들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당연시되는 감정이 일정한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서의 얼개를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민 세대’가 의미 없는 콘텐츠를 보고 즐겁거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서수연 교수는 ‘무민 세대’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젊은이들이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여유를 가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AIA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건강생활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6.6점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 평균(6.2점)보다 높았다.

여성가족부가 만9~24세 청소년 7,6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청소년종합실태조사' 결과 최근 일 년 동안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없는 청소년은 전체의 8.5%로 2014년(10.8%)에 비해 줄어 스트레스 경험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가끔 또는 한두 번 경험했다는 청소년은 83.7%로 3년 전(70.6%)에 비해 증가했다.

청년층 실업률은 작년에 9.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자 외에 취업 준비자 같은 사실상 실업자를 모두 포함한 ‘체감 실업률’ 역시 작년 22.7%로 사상 최고였다.

정부 공식 통계가 아닌 일부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 청년 체감 실업률을 30%를 넘어 5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6년 청년 체감 실업률이 34.2%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청년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개월에 이른다. 재학 기간으로 모자라 졸업 후 1년간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다.

막상 취업하더라도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다. 취업에 성공한 청년의 83.8%가 첫 월급이 200만원을 밑돌았다. 이 때문에 취업해도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전체 취업자 수의 61.5%다.

한국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6명으로 OECD 평균(인구 10만명당 12.1명)의 2.4배다. 특히 10대와 20대, 30대 젊은이들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자살 시도자는 자살 사망자의 10∼40배(청소년은 50∼150배)로 약 52만 4,000명이나 될 정도로 많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The first step in solving any problem is recognizing there is one)”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대사다. 비록 ‘무민 세대’를 낳은 사회에 셀 수 없이 다양한 문제들이 있을 지라도, 그래서 해결하기 어려울지라도, 일단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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