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함양군의 비지정문화재
qkrq**** 조회수 5,742 작성일2012.03.30

 함양군에 있는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들을 알려주세요.

 

사진과 함께 설명을 해 주세요.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에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lt****
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본인 입력 포함 정보

1.덕노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162-8
시 대  현대


덕암리의 거주민 27명이 8년동안 곗돈을 모아 1959년에 세우고 그 한 사람인 송운 정순목이 기문을 지었다.


덕노란 덕암에서 태어나 덕암에서 늙는다는 뜻이며 계원 27인이 각자 시를 지어 걸었다.

 

 

2.구로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월암리 망월
시 대  일제강점기


병곡면 망월에 있으며 철종5년 갑인년(1854)에 태어난 9명이 갑계를 모아 수련키로하고 1923년에 건립하였다.

 

 

3.원계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가촌
시 대  일제강점기


병곡면 가촌에 있고 하일이 이병상과 풍류를 즐기던곳에 200년 뒤 원계 하재섭이 영모재를 지었고 그 아들 하정식이 6대조 일을 추모하여 1919년에 원계정을 세우고 손자 하종철이 완성 하였다.

 

 

4.하한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솔숲
시 대  대한제국시대


함양읍 대덕리 솔숲에 있으며 1905년에 건립하였고 위수 하재구가 수양하던 곳이다.


하재구는 진사 하석문의 아들로 철종조에 진사를 하고 고종황제시절에 의관이 되었다. 동학란에 폭도들을 잡게하여 고을을 편안케 하였으며 정자에는 그의 조카 하기현과 대한제국시절의 순국시인 매천 황현 등의 시판이 있다.

 

 

5.영귀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연덕리 휴촌마을
시 대  현대


병곡 송평에 있으며 단종조의 충신 고은 이지활의 손자인 송계 이지번이 수안군수시절 연산군의 어지러운 정치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정자를 짓고 수양하였다. 병란으로 정자가 폐허가되어 후손들이 중건하였다가 1946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원래 송계가 연산군 원년(1495)에 창건하고 1907년 13세손 이교운, 14세손 이종필등이 중수하고 1946년 송계가 노닐던 이요대위에 이전 건립하였다. 1954년에 정재경이 이건기를 지었다.

 

 

6.동산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평정리 372-4
시 대  현대


백전면사무소 뒷동산에 있고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 단장 박병헌의 지원과 김형보등 계원 10명이 뜻을 모아 1997년도에 건립하였다.

 

 

7.모운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79-1
시 대  일제강점기


백전면 운산리의 장로들이 1922년에 수신계를 만들어 1929년도에 운양정으로 건립하였다. 그 자손들이 모운계라 개칭하고 정자를 중수하여 1985년도에 모운정이라 바꿨다.

기문은 국회의장을 지낸 이재형이 지었다.

 

 

8.망월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평정리 산 78
시 대  일제강점기


백전면 평촌에 있으며 삼척박씨인 소산 박두호가 1922년에 건립하였다. 정승현과 이명상이 지은 기문이 있다.

 

 

9.벽송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평정리 135-3
시 대  조선시대


백전면 경백리 함곡관 위에 있고 송정 강문필이 수양하던곳으로 광무 원년(1897)에 후손이 추모하여 건립하였다.

 

 

10.화석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경백리 127-2
시 대  일제강점기


백전면 능경에 있는 1910년에 건립한 삼척박씨 종실이다.

 

 

11.모은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대남리 900번지
시 대  현대


서상면 대로에 있으며, 석은 김혁경, 노은 김숙의 수양하던곳에 후손인 김용옥이 1945년경에 건립하였다.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유람하다 방문하여 모은정사기를 지었다. 1947년에 유진만이 상량문을 지었다.

 

 

12.송강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은행마을
시 대  현대


서하면 은행마을 앞에 있으며 송강 오처상이 수양하던곳에 200년 뒤의 후손인 오석두가 1961년에 세웠고 정도현이 상량문을 지었다. 오시영이 1962년에 기문을 지었다.

 

 

13.관운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해평마을
시 대  일제강점기


서하면 해평마을에 있으며 농운 염만수가 수양하던 곳으로 괘관산. 백운산 2개의 산 사이에 있다고 하여 관운정으로 이름 짓고 후손인 염환필이 기록문을 지었다. 그해에 애국지사 김영덕이 상량문을 지었는데 단제기원을 썼으니 독특하다.


1919년 김용진이 기문을 짓고 이원일이 서문을 지었다. 1920년에 군수 민인호 및 동강 김영한등이 시를 읊었다.

 

 

14.송 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송계마을
시 대  조선시대


서하면 송계에 있고 영조4년(1728) 무신란시 의병을 일으키고 창의문을 지은 전근의 고택이다


선생의 공이 인정되어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그때의 약서문이 게시되어 있으며 5대손 전재규(全在珪)가 중건하고 기문을 지었다. 마당 곁에는 선생의 현손인 효자 전형수의 정려비각이 있다.


2000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현판, 기문등은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15.농은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 중동
시 대 일제강점기


안의면 중동마을에 있고 성주이씨 문중 부호군 이시빈의 심신 수련소로 선현들을 모시고 배향하기 위하여 1937년에 건립하였다.

 

 

16.귀원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박동
시 대  일제강점기


안의면 초동리에 있고 애산 박준구의 수양소로 그 아들 박영화가 추선대와 애산유허비를 세웠다. 1923년에 애산을 추모하여 애산당을 세웠는데 정승현과 정영규가 기문을 지었다. 1945년에 건물을 약간 옮겨 이건하였다.


귀원이란 이름은 애산이 중추원 의관을 그만두고 시골로 돌아온 것을 기념한 것이다.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기문이 있다.

 

 

17.삼오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이전리 율림
종 목  일제강점기


안의면 율림에 있고 훈도 박덕총이 수양하던곳이다. 삼오는 선생의 호이며 이곳으로 네 번째 이건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 현판을 내렸다.

 

 

18.송석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82
시 대  조선시대


지곡면 평촌리에 있고 문헌공 정여창 선생의 13대 종손인 서산군수 개은 정재기(정재기)가 고종8년(1871)에 건립하였다.

 

 

19.구룡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산133-1번지
시 대 현대


1968년 부산과 함양의 계원들이 용유담 바위위에 세운 정자이다.


용유담에 용 9마리가 살았다는 전살에서 이름을 지었다. 1972년에 강기대(姜起大)가 기문을 지었다.

 

 

20.귀령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시목리
시 대  일제강점기


지곡면 시목리에 있으며 선조조의 명신 휴암 백인걸의 종손이며 문인인 귀령 백덕민이 무이봉 아래에 은거하며 수양한곳에 10세손 백남윤등이 추모하여 1921년에 건립하였다.


서문은 1924년에 이직현이 지었다.

 

 

21.호 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부야
시 대  조선시대


지곡면 부야에있고 효자 하진룡이 시묘할때에 도적이 공의 의복을 훔쳐가다가 호랑이에게 물린적이 있어 호정이라 이름하였다.

 

 

22.만귀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상개평
시 대  조선시대


지곡면 상개평에 있고 정여창 선생의 13대 종손이며 서산군수를 지낸 개은 정재기가 고종8년(1871)에 세우고 기문을 손수 지었다.


고종13년(1876)에 함양군수 이상선이 개은을 방문하고 만귀정서를 지어 주었고 작고한 몇해 뒤 고종19년(1882)에 아들 정직현이 추모기를 지었다.


만귀정의 액호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나 유실을 우려하여 후손들이 별도 소관하고 있다.

 

 

23.경원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121-2
시 대  현대


지곡면 오평에 있고 지신재 노개방이 임진왜란때 동래부 교수로서 부산 송상현과 함께 동래성을 사수하다가 정원루에서 순국하였다.


8세손 노경수가 1938년에 밀양시 충렬단 아래에 신도비를 세우고 1945년 이곳에 경원정을 세웠는데 정원루에서 순국한 것 을 경모한다는 뜻이다.중재 김황이 기문을 지었다.

 

 

24.오양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오평
시 대  일제강점기


지곡면 오평에 있고 무명와 노정현이 학문을 연마한곳이다. 1919년에 노정현이 세우고 상량문을 손수 지었다.


선생은 고종조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25.망북정


종 목  비지정문호자ㅐ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시 대 일제강점기


수동면 서평 연화산 중턱에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남계 임희무를 기리기 위해 1915년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남명 조식선생의 문인으로 명종7년(1552)에 강익, 정복현과 함께 남계서원을 세웠다. 1558년 문과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승지, 우승지와 순항,금산,밀양,울산,능주의 군수를 지냈다.


관직을 떠난후 망북정 자리에 오두막집을 짓고 수양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기문은 한말 전남 의병장인 기우만과 후손 임기택이 지었다.

 

 

26.삼괴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효리
시 대  일제강점기


효리에 있고 일로당 양관과 그 손자 구졸암 양희의 강학소였는데 1938년에 후손 양준영이 중건하고 삼괴정이라 하였다.


삼괴란 삼공을 뜻하니 후세 자손에 삼공의 출현을 바라는 뜻에서 유래된다. 김영한이 기문을 지었고 율곡 이이의 제구졸암, 개암 강익과 석곡 성팽년의 일로당 시판이 있다.

 

 

27.춘수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승안사
시 대  현대


수동면 승안사지 입구에 있고 1947년에 춘수당 후손이 건축하고 사적비도 정자앞에 건립하였다.

 

 

28.함허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 지곡
시 대  조선시대


유림면 손곡리 지곡마을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함허정 아래로는 엄천강이 흐르는 절경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시대 초기에 함양군수로 부임한 최한후가 산수가 빼어난 이곳에 지은 것이다


그는 고을 사람들에게 농사를 권장하며 학문을 일으키는데 크게 힘썼으며 풍속을 바르게 하고 백성들을 교화하는데 선정을 베풀었던 것이므로 후에 함양군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려 함양상림에 공덕비를 세웠다

 

 

29.동현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유림면 매촌마을
시 대  현대


유림면 매촌마을 뒤에있고 나주임씨 문중에서 조상을 기리기위해 1993년에 건립하였다.

 

 

30.영귀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유림면 서주
시 대  일제강점기


유림면 서주에 있고 묵재 하달영(河達盈)이 수양하던곳에 증손 하재청이 추모하여 1938년에 세우고 기문을 지었다. 정자 건너편의 사적비는 1985년 하동근이 짓고 주손 하영민이 세웠다.

 

 

31.화한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문정
시 대  현대


한말에 중추원 의관을 지낸 화산 강주용과 그 아우 한계 강주백 형제가 수양하던 조은대 근처에 한계의 아들 강현종이 1947년에 정자를 세우고 호의 첫글자들을 따서 화한정이라 이름하였다.기문은 하기현(河琪현)이 지었다.

 

 

32.선유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하정
시 대  현대


석문암 계원 38인이 나뭇꾼과 선녀 전설의 현장에 정자를 세우자고 발의하여 1976년에 건립하고 계원의 하나인 송암 정창학이 기문을 지었다. 지산 최점갑이 한글로 선유정의 유래를 지어 게시하였다.


전설에 옛날 인걸이가 선녀의 목욕중에 아미 선녀의 옷을 훔쳐 같이 살다가 어느날 선녀의 날개옷을 주니 선녀는 하늘로 올라갔고 인걸과 아이들은 울면 하늘만 바라보다 화석이 된 것을 벽소령의 부자암이라 하였다. 이 전설에 연유하여 선유정이라 하였다.입구에는 석문암이 쓰여져 있다. 승천한 선녀를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바위 전설을 기억하기 위해 석문암계를 조직한 최성문과 박한규등 38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33.부연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도마
시 대  현대


한명회의 후손으로 순조시대에 무주에서 이사온 춘정 한일택과 한유택 형제가 수양하던곳으로 한일택의 증손자 한진석이 1955년에 세우고 김종가가 기문을 지었다.


부연이란 말은 속전에 두류산 맥이 동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땅에 들어간다고 하기에 관아에서 큰 가마솥을 던져 넣어 그 기세를 누르려고 하였다는데서 유래한다.

 

 

34.이요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구룡리 서계
시 대  조선시대


인조8년(1630)에 생원이 된 손재 김억립(金?立)이 인조 22년(1644)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이곳에 정자를 짓고 동실을 모명재, 서실을 망남헌, 기타 잠부동, 풍호대, 영귀암이라 명명한 뒤 은거하면서 산수를 벗삼아 일생을 마쳤다.고종 17년(1880)에 그 7세손 김수환이 중건하려다 못하고 아들 김재만이 완공하였다. 고종17년에 김창환과 고종19년(1882)에 김익용의 중건 기록이 있다.


1931년에 중수하였다. 이요란 요산요수에서 취한 것이다.

 

 

35.송계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죽곡리 죽곡
시 대  일제강점기


함양읍 죽곡마을앞에 있다. 송계 노덕영이 1920년경 고조부 위고 노영수의 효를 받들어 후손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활용코자 건립하였다.

 

 

36.병담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 용소밑
시 대  일제강점기


죽곡 출신의 진사 노태현(1845-1919)의 장수처이다. 선생의 호는 소송이고 자는 응구이다. 선생은 조선말의 거유인 성재 허전선생과 계당 유주목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면우 곽종석 선생과 역자지교의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소송선생은 조선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이후 병담계곡에 초당을 짓고 은둔하여 제자양성에 힘쓰며 여생을 마치셨다. 문집으로 소송집을 남겼고 그 속에는 선생의 시문이 들어있다. 현재의 건물은 선생의 손자인 군성 노윤식이 초당을 와가로 개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자 앞에는 너른 바위가 펼쳐져있고 그 위를 계곡수가 흘러 선경을 방불케한다. 계곡 건너편에 10폭 병풍을 펼친듯 바위들이 늘어서 있어 병풍소 또는 병담이라는 별칭을 얻은 곳이다.

 

 

37.병담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상림
시 대 조선시대


고종황제 46년(1906)에 경상남도 유림과 정삼품 박정규, 김득창이 문창후 최치원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고 모현정(慕賢亭)이라 불렀으나 고운 선생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사운정이라 고쳐 불렀다

 

함양의 시우회원들이 이곳에서 시조창을 즐겨 부르고 있으며 천령제시 각종 문예 행사가 열려 군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정면3칸, 측면3칸의 8작집이다.

 

 

38.수옥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시 대  일제강점기


병곡면 도천리 도천마을 동쪽 구릉 너머 월암천 변에 있다. 중추원 의관을 지낸 하석기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1929년에 지은 정자로, 측면 2칸, 정면 2칸의 팔작집이다. 환우헌이라고도 한다.

 

 

39.우집의 처 남양 방씨 열녀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시 대  조선시대


모우당 우문화의 아들 봉사 우집의 처이다. 정유왜란(1597)때 왜적이 와서 할머니를 죽이고 방씨를 붙잡거늘 땅에 넘어졌다. 낯을 가리고 적을 꾸짖다가 끝내 해를 입었다.


그 자손중에 8명의 효자가 나 일렬팔효로 일컬어졌다.신해년 홍수에 정려비가 없어져 순조13년(1813)에 비를 중건하고 정여창 선생의 10대손 종암 정덕제가 비문을 지었다.

 

 

40.열부 이인용의 처 풍천 노씨 정려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송평
시 대  조선시대


열부 노씨는 노광록의 딸이며 이한필의 현손 이인용의 처이다.


남편이 학질로 여러해 고생하자 자기 다리살을 베어 달여드리니 완쾌되었다. 남편은 70의 수를 누렸으나 부인은 그 후유증으로 38세에 세상을 뜨니 향리의 진사 하재구를 대표로 나라에 상소하여 고종 광무2년(1898)에 정부인의 직첩과 정려가 내렸다. 그 비는 선조의 정려옆에 있다.

 

 

41.효자 김재명 정려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마평마을
시 대  조선시대


김재명은 충의공 백촌선생의 후손으로 그 선조의 거룩한 얼을 이어받 아 어릴때부터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인근마을까지 칭찬이 자자하더니 공의 나이 20세때 60노령의 아버님이 학질에 걸려 백약이 무용하여 치료하기 어렵게 되었다.


꿈에 현몽을 받아 3차에 걸쳐 허벅다리 살을 베어 아버님 모르게 육 회에 섞어 드리니 쾌유하셨다 한다. 거듭 세 번이나 위중했던 아버님이 10년동안이나 살다 돌아가시니 3년간 시묘하면서 예를 갖추어 조석으로 상식하였으니 그 공을 기리는 지방사림들은 전후 두차례에 걸쳐 상소하니 왕으로부터 정려의 명이 내렸다.

 

 

42.박씨 4효자 정려비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 소현마을 앞
시 대  조선시대


소현마을 앞 서쪽에 있으며 통사랑친군남영문안을 지낸 박병일이 고종28년(1891)에 세운 삼척박씨 정려로서 당대에 보기드문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물로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있다.안에는 4효자인 효자 진사행참봉 박자천, 효자진사 박환, 효자 증 통 훈대부사헌부감찰 박창모, 효자 증 통훈대부사헌부감찰 박영수등의 효자비가 있다.

 

 

43.효열 우택환의 처 진양 강씨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경백리 대평마을
시 대  대한제국시대


강씨는 우택환의 처이다. 18세에 결혼하여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섬겼다. 1910년 5월에 권도용이 비문을 지었다.
 

 

44.효열 박학수의 처 남원 양씨 정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양백리 평정마을
시 대  현대


양씨는 양복의 딸이며 성재 박자천의 후손인 박학수의 처이다. 시어머니의 학질에 다리살을 베어 고기에 넣어 드려 효험을 보았다. 후에 병이 위독할 때 손가락 피로써 입에 넣어드려 3년동안 연명케 하였다. 양씨는 철종4년(1853)에 태어나 1924년까지 살면서 40년을 수절하며 자손 들을 키웠다. 그 아들 박병기가 권재춘에게 글을 받아 1946년에 비를 세웠다.
 

 

45.열부 박경규의 처 김해 김씨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옥산마을
시 대  일제강점기


효열부 김해김씨의 정려비이다. 1935년에 의정부 찬정을 지낸 이재현이 정려기를 짓고 한말의 명필인 윤용구가 글씨를 썼다.
 

 

46.효자 박준영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옥산마을
시 대  조선시대


효자 박준영(1873~1940)은 밀성박씨이며 강수 박훈의 후손으로 어머니 병에 단지하였고 또 병이 위독한데 사람고기가 좋다는 말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드려 살렸다. 성균관장의 효행 표창장이 있다.


1972년에 비문을 송경환이 짓고 그 아들 박명만이 비석을 세웠다. 글씨는 화림재 전공유적비의 전면 큰 글자를 쓴 전영휘가 썼다.
 

 

47.효자 서준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도천
시 대  조선시대


효자 서준은 7세때 어머니가 병중에 산꿩을 원하였다. 한여름이라 구하기 어려워 통곡하고 돌아오니 암꿩이 날아들어와 잡아 고아드려 효험을 보았다. 13세에 모친상에 시묘하고 또 부친상에도 시묘하였다. 종신토록 한결같이 채색옷을 입지않고 잔치에도 나가지 않았다.

 

고종 30년(1893)에 정려하였다. 비석에는 광서19년(1893) 12월13일자 우승지 구석조가 받든 예조입안이 새겨져있다.
 

 

48.열녀 전세적의 처 분성 허씨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
시 대  조선시대


정선전씨 화림재공의 5대손인 전세적의 부인 분성허씨가 조선 영조 1770년에 남편이 괴질에 걸려 26세때 사망하자 허씨부인은 혼절하였다가 남편이 죽은지 5일만에 남편의 뒤를 따라 자살하니 나라에서 1812년에 열녀로 뽑고 열녀비를 세워 후세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49.효열 송일진의 처 김해 김씨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황산마을
시 대  미상


김씨의정려비문은 추운당 이덕응이 지었고 송일진의 집안 동생 송필주가 썼다.
 

 

50.효자 전세량 정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
시 대  조선시대


성균관 생원 전세량의 효자 정려로 어릴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특히 어머니가 병환으로 있을 때 근심걱정으로 밤낮없이 병상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을 다해 천지신명께 빌자 호랑이가 노루고기를 물어다 던져주어 필요한 영약을 얻어 병환을 낫게하자 사림들이 추앙하여 나라에 천거하여 고종20년(1883) 10월에 정려하였다.
 

 

2012.04.02.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직접정리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