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옥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노래를 시작한 그녀, 네 살 바기 어린 합창단원으로 첫 걸음을 내딛은 후 지금까지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소프라노 신영옥 씨. 조수미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녀. 전 세계를 누비는 음악인으로 이미 한국의 자랑으로 자리 잡은 신영옥 씨의 앙코르 18번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늘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목이 메어 가사를 잇지 못하는 그녀. 무대 밖에서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내는 가슴 따뜻한 신앙인 신영옥 씨가 노래하는 하나님을 향한 구구절절한 러브송이 가슴 찡하게 울려온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신영옥.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런던 코벤트가든 등 세계 오페라 무대를 휘어잡아왔다. 성악가로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그녀는 "부질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성공을 하고 싶고 뭔가 갖고 싶기보다는 제가 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힘든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노래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믿음이 좋았던 어머니와 언니들은 항상 "오페라는 하나도 안 반갑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스럽겠냐"고 말씀하신단다. 어릴 때는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싫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해외생활을 하며 어려움과 힘듦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됐다.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녀가 메트로폴리탄에 입성하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위출혈이 있어 먹는 음식을 토하고 새벽기도를 하며 계속 매달렸다. 어느 추운 겨울, '안되면 나는 죽는다'는 각오로 시험을 보러 갔다. 눈앞의 성공과 실패만을 보며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힘이 컸다.

"어머니가 굉장히 엄하셨어요. 제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알아서 해주시는데 왜 맡기지 못하냐고 혼내셨죠."

몇 번에 걸친 실패 끝에 드디어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것도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했다. 신 씨가 합격했던 1991년에는 그 해에 뽑힌 여자 성악가 중 그녀 혼자만 리릭콜로라투라(서정적이고 고운 목소리의 기교를 내는 목소리)였고 나머지는 다 목소리가 드라마틱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만약 그 해에 리릭콜로라투라를 잘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면 제가 불리했을텐데 다행히 저 혼자 밖에 없었어요." 힘든 가운데에서 함께 했던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공연 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찬양하면 감격스러운 나머지 끝까지 다 부르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한편 신영옥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90년 3천 여 명이 출전한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서 뉴욕타임즈로부터 가장 뛰어난 우승자라는 호평을 받으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1961년 생으로 나이 57세이며 결혼은 미혼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