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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오세아니아(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비공개 조회수 34,219 작성일2010.10.28

숙제 오늘안에 내야함

지금컴터실이에요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이 3나라에 대한 국기 문화 면적 인구 언어 인족 지형 날씨  주요수출품 문화재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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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스티레일리아에는뭐가있냐면

수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아주 헷갈리죠

시드니나 멜버른으로 알고계신분들이 많은데

캔버라라는 도시가 수도입니다

캔버라가 수도가 된 이유는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가 되는걸 양보하지않아서 멜버른과 시드니의

가운데에 위치한 캔버라를 수도로 정했죠

 

인구.

약 2000만명정도입니다

 

면적.

769만 2208㎢로 전세계 6번째로 큰나라입니다

 

자연환경.

호주는 땅이넓은 만큼 자연환경도 다양합니다 호주의 북부는 열대기후로 열대림과 열대초원이 나옵니다 또 호주 서부와 내륙은 건조 지역으로 사막과 초원이 주를 이룹니다 동부지역과 남서부지역은 비교적 날씨가 온화한 온대기후입니다

주요도시. 기후가 온화한 동부지역과 남서부지역에 밀집해있습니다 남서부지역의 도시로는 퍼스 동부지역의 도시로는 시드니 멜버른을 들수있습니다

역사.

약 40000년 전부터 에버리진 (호주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땅이였던 호주 대륙은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영국령으로 선포됩니다. 초기에는 영국 범죄자들을 보내던 유배지였다고 하였으나 곧 태양과 금을 찾아온 이민자들의 신대륙으로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호주인들이 죄수들의 후예라는 통념은 잘못된 겁니다. 호주 개척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유럽의 침략자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내어주고 노예로 전략하거나, 유럽에서 들어온 질병으로 인해 거의 몰살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1931년 차지권을 얻은 뒤 3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죠 과거에 백호주의 (강력한 백인 위주의 이민정책,백인혈통만을 고집하고 유색인종을 멀리하는 주의)를 써서 지금도 유색인종은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호주의를 버리고 다민족,다문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시적인 생물상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큰 맹수가 없어 일찍이 목축업이 발달한 세계 제 1의 양모 생산국입니다.

 

 

1. 식민기 이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인도양의 남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럽인이 실제로 이 대륙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부터이며,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 (duyfken)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에 내항한 것이 최초로, 그로부터 가끔 네덜란드의 배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7세기를 통하여 네덜란드인은 이 대륙의 북안 서안 및 태즈메이니아섬 등의 지역을 묶어 신 홀란드 (Nieu Holland)라고 불렀습니다.

 영국인으로서 이 대륙에 최초로 (1688)온 사람은 영국의 항해가 W.댐피어였고, 지금까지 유럽인이 가보지 않은 동해안 전체를 자세히 조사하고 문명인이 살수 있는 땅임을 밝혀 영국 영유에의 길을 연 사람은 제임스 쿡이였습니다. 그는 1777년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단에 이르러 시드니쪽을 북상하여 보터니만에 상륙 다시 북상하여 요크곶 부근의 한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부의 영유를 선언하였다. 뉴사우스 웨일즈라는 명칭은 이때 생겼습니다.

 

 

2. 식민기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1788년 1월 11척의 영국 선단이 1030명 (그중 유형수는 726명)을 태우고 보터니만에 도착하였고, 개발의 근거지로서 시드니가 건설되었습니다. 1793년에는 최초의 자유이민 11명이 도착하였습니다.

1813년 시드니 서쪽 블루산맥 너머에 광활하고 기름진 들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해부터 양모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목축업이 시작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발전의 제 1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830년대에는 호바트 브리스번, 멜버른, 애들레이드 등에 새 식민지가 건설되었으며 에스파냐 원산인 메리노종의 양이 도입되고 개량되어 1807년에는 양모가 처음으로 런던에 수출되었습니다. 1810년에는 뉴사우스 웨일즈 주의 양 사육수가 늘었습니다.

이민과 자연증가로 인구도 늘어났습니다. 자유이민이 증가함에 따라 유형을 중지하라는 요구가 높아져서 1840년에는 태즈메니아섬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하고는 유형이 중지되었습니다. 1851년에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서부에서 또 빅토리아주에서 다시 1862년에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도 금광이 발견되어 세계 각지에서 이민이 쇄도하였다.

제 2기의 대륙 개발은 이 금광에 의하여 촉진되었고, 금광 채굴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밀의 재배 및 기타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후 이 나라의 농업은 영국 본국에 대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었으며, 낙농과 더불어 육류가공 냉동업도 발달하였습니다 1880년대부터 백호주의 정책이 제창되기 시작하였고 1888년에는 중국인 이민의 제한이 18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인이 이득을 챙겨 본국으로 귀한하는 일이 자주 발생)

 

3. 주권 확립기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각 식민지는 영국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상호간의 연략도 원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고,1823년 이래 입법원의 설치가 각 식민지에서 차례로 인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840년-50년대에는 권한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1855년에는 3권분립,양원제 책임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헌법이 영국 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다른 각 주가 같은 내용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방 이민 주 상호관세등 각 주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관이 필요하였습니다.

 

 

4. 연방 설립

오스트레일리아는 1893년 이래 각 주 총리회의가 개최되면서 각 주를 통일하는 연방을 설립하려는 기운이 성숙,1900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되었고 1901년 1월 1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발족되었습니다.

연방 헌법에 따라 연방의 수도가 잠정적으로 멜버른으로 정해졌으나 1911년에는 수도지역 Australia Captital Territory이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1913년 캔버라로 명명하였습니다.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습니다.

교포.

한인교포 분들도 많이 거주하시겠지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입국하시는 한국분들도 많습니다.

시드니에 한국분들 굉장히 많이 거주합니다. 시드니 시티 길거리를 걸어다니시면 한국분들 많이 만날수 있으며 식당, 겜방, 슈퍼와 같은 한인 상점도 많습니다.

특히 한인촌이라 불리는 스트라트 필드를 포함해 캠시, 이스트우드에 한국분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시드니, 멜번, 브리즈번과 같은 큰 도시를 벗어난 시골지역에는 한인 교포분들은 거의 거주하지 않으며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소지한 한국분들이 농장에서 거주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골 농장 지역에서도 다른 국가 사람보다 한국분이 더 많을때도 있답니다

경제.

객관적인 지표로써 따지면, 국내총생산(GDP)로 최근 우리나라를 앞섰습니다

세계13위의 규모입니다

반면에 인구는 작아, 일인당 GDP는 3만불..참고적으로 우리나라는 2만불입니다

주요수출/수입품

주요수출품목

오스트레일리아는 자본이나 기술력도 뛰어나고 지하자원도 매우 풍부합니다

하지만 인구가 적어 내수시장이 좁고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원자재 수출이나

밀이나 소고기 과수같은 식량자원들을 수출합니다

수입품목

앞써말씀드린 것처럼 공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공산품을 주로 수입합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문화나 정치적으로는 관계가 미약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긴밀한 사이입니

다 우리나라가 만드는 철강을 비롯한 자동차,선박 항공산업 등등 공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원자재를 호주로 부터 수입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전기를 만드는 동력자원또한 마찬가지죠

또 우리나라는 호주에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공산품을 팔며 많은 수익을 올리고있기에

경제적으로 환상의 짝꿍이라고도 할수있죠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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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고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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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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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Zealand
Aotearoa
(국기)(국장)
국가: 하느님께서 뉴질랜드를 지켜주시리.
수도웰링턴
41°17′ S 174°47′ E
공용어영어, 마오리어, 뉴질랜드 수화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엘리자베스 2세
아난드 사티아난드
존 키
독립
 •
영국으로부터 독립
1907년 9월 26일1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268,680㎢ (75위)
2.1%
인구
 • 2009년 어림
 • 2006년 조사
 • 인구 밀도
 
4,306,000명 (122위)
4,027,947명
15명/㎢ (201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8년 어림값
$1157.1억 (60위)
$27,060 (34위)
HDI
 • 2006년 조사

0.944 (20위)
통화달러 (ISO 4217:NZD)
시간대
 • 여름 시간
UTC + 12/13 (UTC)
UTC + 12/13 
ISO 3166-1 554
ISO 3166-1 alpha-2 NZ
ISO 3166-1 alpha-3 NZL
인터넷 도메인.nz
국제 전화+64
11931년에 웨스터미니스터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고, 1986년에 헌법이 제정되었다.
2002년 위성사진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마오리어: Aotearoa 아오테아로아)는 남서 태평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두 개의 큰 섬(남섬과 북섬) 그리고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어 명칭인 아오테아로아는 하얗고 긴 구름의 나라라는 뜻이다.

면적은 27만 534㎢, 인구는 4,173,460명(2008년 기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동쪽에 있다. 태즈먼 해를 사이에 두고 2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복지 국가제2차 세계 대전 후에 태평양 지역에서 동맹인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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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은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Abel Tasman)이었다. 그는 이곳을 고향 제일란트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하였으며,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 타스만 이후 뉴질랜드를 찾은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었다. 쿡 선장은 1769~1777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답사하였다. 이어 1814년 런던에서 선교사가 와서 그리스도교 교화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곳은 뉴사우스웨일스(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로서, 고래와 바다표범잡이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기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초 냉동선이 개발되자 오지에서도 농목업이 발전하였고, 18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토지매매와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마오리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反英) 감정 완화를 위해 힘썼고,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영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을 통해,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어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 때에는 총 5,350명이 영국 연방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또한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은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조약(ANZUS Treaty)을 체결했다. 이는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이다. 1985에는 비핵화지대(Nuclear freezone)을 선언하였으며 1987년 David Lange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뉴질랜드 비핵화지대 선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핵추진함에 대한 뉴질랜드 기항불허로 이어져 ANZUS조약의 권리가 중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굴하지 않고 이후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Treaty of Rarotonga)을 체결, 2006년 기준 노동당(Labour Government) 헬렌 클라크(Helen Clark) 총리는 야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의 지지도 함께 이끌며 뉴질랜드 비핵화지대(Nuclear-free zone)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자연 환경

지리

뉴질랜드는 호주로부터 1,600㎞ 떨어져 있으며, 뉴질랜드는 쿡 해협(Cook 海峽)으로 격리된 남·북 두 섬으로 이루어지는 산이 많은 섬나라로서, 해발 200m 이하의 땅은 온 섬의 6분의 1 정도이다. 총면적은 북섬, 남섬, 스튜워트섬(Stewart Island), 그 외 작은 섬들을 모두 합쳐 268,680㎞로 영국보다는 약간 크고, 일본보다는 작으며, 미국의 콜로라도주와 비슷하며, 대한민국의 2.7배, 한반도의 1.3배이다. 전체면적의 43%가 북섬, 56%가 남섬으로서 남섬이 더 크다. 두 섬은 지형적 성격이 크게 다른데, 북섬은 전체적으로 구릉성 토지가 펼쳐지는 가운데 에그몬크산(Egmont 山, 2,510m)을 비롯하여 화산이 돌출한다. 한편, 남섬은 서쪽에 남알프스 산지가 남북으로 달리고 빙설에 빛나는 고산지형이 탁월하다. 최고봉인 쿡산(3,764m) 주변에는 태즈만·폭스 등의 대빙하가 발달해 있다. 산록부에는 빙하호, 서해안에는 U자곡(字谷)이 침수한 밀퍼드사운드(Milford Sound) 등의 아름다운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한다. 뉴질랜드는 화산과 빙하의 나라로서 그 지형이 매우 아름답다. 남섬은 아직 원시림으로 뒤덮힌 지역이 많다. 특히 70%가 남알프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산지이며, 평지는 고작 9%에 불과하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3000m가 넘는 고산준봉이 잇달아 이어지고 빙하의 침식을 받은 피오르드 지형은 수많은 호수와 U자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변화가 풍부한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북섬의 특징은 지열지대를 포함한 화산지대에 온천과 간헐천, 그리고 크고 작은 호수가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비옥한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국토 최남단엔 스튜어트섬이 있고 크라이스트처치로부터 동편으로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 캐썸섬(Chatham Island)이 위치해 있다. 전체적으로 국토는 산과 언덕으로 뒤덮혀 있는데 75%가 해발 200m 이상이며, 국토의 최고점은 해발 3,754m인 쿡 산(Mount Cook)이다. 북섬의 가장 높은 산은 루아페후 산(Mount Ruapehu)으로서 2,797m이다. 이러한 고산과 타우포, 로토루아의 호수는 약 1백만 년전에 발생한 통가리로 산(Mount Tongariro)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것이다. 호수는 서기 186년에 화산폭발로 생성된 북섬의 타우포 호가 최대이다. 가장 긴 강은 북섬의 와이카토 강으로 425㎞에 달한다.

기후

뉴질랜드는 온대 지역에 속하지만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북섬의 최북단에는 연중 따뜻하며 눈을 보기 힘들다. 반면에 남섬의 최남단은 겨울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그리고 서안(西岸) 해양성 기후로서 연강수량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600∼1,500㎜인데, 남도는 남알프스 서쪽 경사면에서는 5,000㎜ 이상에 이르는 지역도 있어, 동쪽지역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전지역이 편서풍대에 속한다. 기온의 교차(較差)는 작으며, 연(年)평균 기온은 북섬의 오클랜드반도(Auckland 半島)에선 15℃ , 남섬의 남부에선 10 ℃안팎이다.

생물과 환경 보호

전국적으로 13개의 국립공원을 갖고 있으며 이중 Tongariro와 Tewahipounamu 국립공원은 세계의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Tongariro는 미국의 Yellow- stone 국립공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국립공원이다. 또한 13곳의 해양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다.여타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신·구생대의 생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약 8천5백만년 전인 백악기때부터 다른 대륙과 격리되어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같은 격리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뉴칼레도니아와 함께 유일하게 뱀이 없는 지역이다. 최초의 포유류는 두 종의 박쥐였다. 뱀이 없는 나라(동, 철 성분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습기가 많아 서식하지 못함) 뉴질랜드는 포유류보다 새들의 종류가 많아 약 250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오포섬은 1958년 가죽을 목적으로 12마리를 방출하였으나 천적이 없고 번식력이 좋아 현재 약 7천만 마리가 살고 있어 해로운 동물로 분류되어 정책적으로 없애고 있다. 식물중에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를 수 있는 KAURI 나무로 (전국토의 4%) 약 40m, 가지가 20m나 된다.환경보호활동에 적극적인 뉴질랜드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그 해결이 쉽지 않은 숙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고유 동식물에 대한 대책이다. 사람들이 이주한 이후 낮은 지대의 늪과 습지대에 사는 고유 동식물 85%가 멸종되었다. 또한 800종 이상의 생물들이 심각한 생존 위험에 처해 있다. 뉴질랜드의 상징인 키위새 역시 그렇다. 북쪽에 사는 갈색 키위는 멸종위기에 있으며 다른 키위들은 해마다 6% 정도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진화하고 생존했던 새는 모두 93종이었으나 이중 43종이 멸종되었고, 37종은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고유 생태계의 변화는 주로 서식지의 파괴와 분열, 그리고 해충과 잡초 때문이다. 특히 해충은 뉴질랜드의 생태계와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외국에서 들어온 해충과 잡초들은 뉴질랜드 고유의 생물들과 뉴질랜드 고유의 생물들을 멸종으로 몰고 간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검역당국은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과 화물에 대해 검색을 철저히 한다. 피해를 주는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양이, 개, 흰족제비, 주머니쥐와 같이 외국에서 유입된 동물들이다. 이들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던 동물이나 꽃 등에 악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해치는 동물이 없어 날지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모아새(멸종)나 키위새는 이들 외래종에게 먹히기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지난 60년까지는 고래를 잡았지만 지금은 열렬한 고래보호국이다. 고래잡이를 중단한 후 떠났던 고래들이 되돌아오고 있는데 심지어는 고래가 떼지어 해변에 몰려오는 경우도 있다. 과거 같으면 앉아서 돈을 버는 횡재겠지만 지금은 훈련된 고래구조반원을 불러 다시 바다로 되돌려 보낸다. 세계적으로 바다의 수산자원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뉴질랜드는 어족자원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남태평양에서 유망을 이용한 어로작업을 금지하는 데에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정치

뉴질랜드는 영국 여왕을 모시는 상태에서 영연방 입헌 군주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왕이 상징적인 국가원수이지만 뉴질랜드 총독이 그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 정부형태는 영국식 의원내각제이며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나 실제로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이다. 노동당·국민당의 양당제가 확립되어 있어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1989년 8월 롱이 건강상 이유로 사임, 외무장관 파퍼가 총리직을 승계했다. 현재 실권자는 존 키 제38대 총리(2008~)이며, 헌법 규정에 따라 그가 추천한 아난드 사티아난드 변호사가 현재 뉴질랜드의 총독(명목상, 2006~)이다.

국회(The New Zealand House of Representatives)는 단원제이며, 총 120석(지역구 62+마오리특별지역구 7+전국구 51, 2005년부터 현재까지는 121석)을 철저하게 정당득표율로 나누는, 영연방국가 중 유일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1996~)를 취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정신에 입각하여, 남섬의 지역구 의석(현재 16석)은 전체 지역구 의석의 25% 이상을 뽑도록 규정했다.

2004년에는 독자적 최고법원인 뉴질랜드 대법원(The Supreme Court of New Zealand)이 창설, 기존 영국판례만을 원용하던 사법권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다. 그 아래에 항소법원과 3개 지역의 고등법원, 지역 주요도시들마다 지방법원이 있다.

2008년을 기준으로 최고실권자(존 키 총리, 2008~), 국회의장(마가렛 윌슨, 1999~), 당시 총독(실비아 카트라이트 2001~2006), 대법원장(시안 엘리스, 2004~)까지 과거 국가의 모든 최고권력을 여성 지도자들이 이끈, 세계 유일무이의 국가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데이비드 롱이 총리 정부 시절의 국적 및 이민법 개정 이후 여성과 소수민족 등 사회적 소수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비교적 강력하다.

주요 정당은 다음과 같다.

2008년 뉴질랜드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정부진영(범여권, Government Benches)

반대진영(범야권, Opposition Benches)

대한 관계

뉴질랜드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우방 국가이다. 1962년 3월 26일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주뉴질랜드 대사관은 사모아, 통가를 겸임하고 있으며, 현재 대사는 이준규(2006년 9월)이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제인 쿰즈(2006년 1월)이다. 양국은 무역 및 경제협력 협정(1967년 4월)을 시작으로, 어업협정(1978년), 국제운송소득면제협정(1978년 12월), 이중과세방지협정(1981년 11월), 항공협정(1993년 8월), 사증면제협정(1994년 8월), 취업관광사증협정(1999년 5월), 범죄인 인도조약(2002년 4월), 영상산업 분야 공동협력을 위한 양해각서(2005년 11월), 정보통신협력약정(2006년 12월)을 체결하였다. 뉴질랜드의 대한국 수출은 11억 7,100만 미국달러 (목재류, 축산물, 유기화학품, 양모), 한국의 대뉴질랜드 수출은 6억 9,900만 미국달러(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제품, 전자제품)(각 2007년)이다. 뉴질랜드에는 한국의 선경(주), 오양, 동원, 대왕수산 등 다수업체가 진출해 있고, 오클랜드에는 총영사관이 있으며, KOTRA도 주재하고 있다. 한국 교민은 23,877명, 체류자는 9,095명이다.(2007년 5월 1일 기준)

피지와의 관계

최근 피지와 뉴질랜드는 기자 억류를 둘러싸고 관계가 냉각되고 있다.

경제

산업

이 나라의 경제는 대부분 농목에 의존하고 있다. 목양(牧羊)은 이 나라 제1의 산업으로서 양은 북도에 60%, 남도에 40%의 비율로 분포한다. 양모의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농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1차산품이 수출의 55%를 차지한다. 그외 육류·유제품(乳製品)은 양모에 버금가는 수출품이다. 낙농지역은 북도에 집중하며, 양모에 비하여 훨씬 집약적으로 경영된다. 남도의 동쪽 및 남쪽 연안에는 혼합농업지역이 발달하여, 목초(牧草) 등과 윤작(輪作)을 하면서 곡류의 생산이 활발하다.농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1차산품을 수출하고 석유와 공업제품을 수입하는 무역구조이다. 주요 수출품은 낙농품·육류·양모·목재·과실·약재 등이고, 수입품은 공산품·기계류·자동차·철강·원유·비료·금속제품 등이다. 1970년대 초까지는 영국이 주요 무역 상대국이었으나 최근 미국·일본이 주요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교통

주요도시는 철도로 연결되며 고속도로도 잘 닦여 있다. 남섬과 북섬 사이를 운행하는 여객선이 있다.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에 공항이 있고 오클랜드·웰링턴 항구가 있다. 주요도시로는 오클랜드·크라이스트처치·웰링턴 등이 있다.

사회

남섬의 면적이 더 크지만, 인구의 75% 이상(300만 명 이상)은 북섬에 살고 있다. 수도 웰링턴과 주요 도시 오클랜드, 해밀턴은 북섬에 위치한다. 남섬의 주요 도시는 크라이스트처치더니든이다. 주민은 유럽계 백인 87%, 마오리족, 폴리네시아인이 있고,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의 90%가 공식국가언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987년부터 마오리어가 공식언어로 채택되어 두 가지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경제적인 상하계급이 나뉘어 있지 않고, 주민 사이에는 평등정신이 강하다. 세계 최초로 양로연금 제도를 실시하고 완전고용 등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키고 있다.스웨덴·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대 복지국가 중의 하나이다. 병이 나면 무료로 요양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없는 노인에게는 연금이 지급되며,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또한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과정이 무상이다. 의무교육연령은 6세부터 16세까지이다. 가족제도는 철저한 핵가족제이며, 20% 이상이 독신이다. 자녀 수는 1명인 경우가 많고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주요 여가활동은 독서, 친구방문, 음악, 정원관리, 개기르기 등이다. 경마를 즐기며 LOTTO라는 복권은 성인의 2/3가 즐긴다.

주요 도시

인구 3만 명 이상의 도시들은 아래 표와 같다. 2003년 통계를 기준으로 순서대로 정렬했다.

도시명총인구수 (2003)
오클랜드1,241,600
웰링턴370,000
크라이스트처치367,700
해밀턴155,800
더니든114,700
타우랑아109,100
파머스톤 노스78,800
헤이스팅스62,300
넬슨59,600
네이피어57,300
로토루아54,900
뉴플리머스49,600
황아레이48,600
인버카길47,800
황아누이39,400
기스본32,700
타우포22,000

5대 주요 도시들의 인구 총합계는 전체 인구의 과반수를 넘는다.

주민

영국계 백인과 마오리족 원주민이 거주, 인도인과 황인도 많이 거주한다. 백인들은 영국계는 물론, 아일랜드계와 네덜란드계 등이 섞여있고, 마오리족은 지역마다 여러 종족들로 나뉘어져있다. 또한 마오리족은 이미 도시로 옮겨가 현대 생활에 적응하였다. 중국인들과 인도인들도 살며, 특히 사모아, 통가, 피지, 쿡 제도 등의 남태평양 도서민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까지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들로 섞여있는 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민법이 어려워지고 있다.

언어

영어마오리어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환경보호

자연보호에는 시민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뉴질랜드에서는 어린이때부터 현장체험을 통한 자연사랑운동을 벌이고 있다.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물의 특징을 조사하게 하고 수질오염이 심할 경우 계몽활동을 펼치도록 한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하루살이 같은 물벌레가 있으면 수질은 매우 양호한 상태이고, 거머리나 다슬기 같은 생물이 있으면 보통 수준이며, 파리나 모기의 애벌레, 물지렁이가 발견되면 더러운 물이라는 사실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과학 탐구정신을 길러주고 물, 공기, 땅 같은 기초적인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오클랜드에 있는 베란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재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화를 보여주며, 아기공룡 둘리처럼 생긴 연두색 괴물 스낙을 설명해 준다고 한다. 스낙은 어린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환경보호 교육을 펼치기 위해 창안된 캐릭터이다. 스낙은 쓰레기더미로 된 산꼭대기에 오르거나 퇴비벌레농장에서 지렁이들과 같이 밭을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모든 것이 재활용으로 이루어진 재활용 도시를 안내하며 아이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또한 현장학습센터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슈퍼마켓 놀이를 통해 환경친화물품을 가르쳐 준다. 예를 들면 주방용 세제, 자동차배터리, 엔진오일, 스프레이, 살충제, 페인트 같은 것은 환경을 오염시키므로 사용을 억제해야 된다고 알린다. 반면 환경친화마크가 표시된 제품을 선호하도록 홍보한다.오클랜드시 버크데일의 일반 가정에는 집 마당 한 구석에 벽돌로 만든 공간이 있다. 식사를 한 후 사과껍질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곳인데 이 음식쓰레기는 퇴비로 재생된다. 음식찌꺼기를 버리면 지렁이가 이를 소화하여 양분이 있는 유기비료로 만들기 때문이다.공기가 잘 통하도록 어린이들은 가끔씩 쇠스랑으로 흙과 음식찌꺼기를 잘 섞는다. 또한 부모들은 인근 산에 나무를 심고 자녀들의 이름이 붙은 나무에 집에서 만든 퇴비를 주는 등 애정을 쏟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환경친화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스키장 역시 환경관리가 잘 되어 있다. 남섬에 있는 퀸즈타운은 아름다운 호반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이 교외에 두 곳 있다. 코로넷 피크 스키장도 그 중 하나로 풍부한 천연설로 인해 구름 위에 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산 정상에는 설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산 아래에는 푸른 초원과 호수들이 많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스키장 어디에서도 쓰레기가 버려진 것을 발견할 수 없다.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상공업의 중심도시인 오클랜드는 전형적인 항구도시이다. 하버브리지에서 내려다 보면 푸른 바다 위에 무수한 하얀 점들을 찍어 놓은 것 같은 수백 척의 흰 요트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부분 개인 소유의 배들로 뉴질랜드 사람들은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가족이날 친구들과 낚시나 항해를 즐기려고 앞바다로 나간다. 이들은 바다오염이 주는 환경재해를 잘 인식하므로 함부로 폐기물을 바다 위에 버리지 않으며, 기름유출사고에도 만전을 기한다.뉴질랜드가 ‘낙원’이라 불리는 것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환경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데 그 참된 이유가 있다.뉴질랜드의 국가수입에서 관광산업은 최대의 외화획득원이다. ‘녹색의 뉴질랜드’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레저를 즐기려고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항상 깨끗하고 푸르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환경친화적인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 나라의 기업은 폐기물의 배출이나 수질 공기오염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뉴질랜드의 워터마스터 테크놀러지사는 캔터베리대학과 공동으로 대기에서 청정수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원리는 대기의 습기를 이용해 하루 20l 의 깨끗한 식용수를 손쉽게 만드는 것이다. 곧 특수 제작된 기계가 빨아들인 공기의 습기로부터 물을 추출한 다음 전기필터와 탄소필터를 통한 3단계의 정수과정을 거쳐 청정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은 비용이 저렴한 데다 어떠한 습도에서도 작동이 가능해 식수난과 환경오염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뉴질랜드는 석탄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공해가 적은 수력발전과 지열발전 등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수력발전은 전체 전력의 70∼80%, 지열발전은 7∼8%를 차지한다. 타우포 호수 부근의 와이라케이 지열발전소는 산업용 전기뿐만 아니라 가정용 온수도 공급하는 다목적발전소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지열발전소로서 굵은 파이프라인과 드넓은 땅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하얀 증기는 퍽 인상적이다.뉴질랜드는 환경보호를 위하여 오존을 파괴하는 CFC의 사용을 억제하며, 무연 휘발유만을 사용하게 하며 쓰레기 재활용 제도를 철저히 실시하열 재활용률이 알미늄 41%, 유리 36%, 종이 42%, 플래스틸 8%, 철 4% 등이다.이런 자연보호로 말미암아 뉴질랜드 어디를 가보아도 우거진 푸른 숲과 맑은 강을 볼 수 있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잘 어우러진 결과이다. 고유 동식물이 외래종 등에 의해 멸종되는 등 심각한 환경문제도 있지만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의 끊임없는 개선노력이 이어지는 한 남태평양의 환경 모범국 ‘녹색의 뉴질랜드’는 그 푸르름을 잃지 않을 것이다.

문화

이 나라에는 마오리족만의 토착 문화와 영국계 백인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마오리족은 높은 실업율, 상대적 빈곤, 범죄, 청소년 불량서클, 복지시설 부족 등의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불만으로 마오리족 고유의 문화가 부흥하는 민족주의 성향이 있다. 요즘와서는 오클랜드, 해밀턴,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같은 대도시들에 여러 이민들이 섞여 사는 이유로 뉴질랜드의 전통 문화는 약간 사라져 가는 편이다. 뉴질랜드는 오랜 전통과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무대예술이 뛰어나, 음악·연극·무용 등의 전문인들이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400개의 박물관과 화랑을 통해 예술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뉴질랜드 심퍼니 오케스트라(NZ Symphony Orchestra)는 연중 100여회의 콘서트를 가지고 있다. 발레단은 26명의 종신단원으로 구성되어 국내공연을 펼친다. 가장 큰 예술행사는 매2년마다 웰링턴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가 있다.스포츠에서는 럭비가 가장 인기 있다. 그 밖에 네트볼, 스쿼시, 소프트볼, 요트 등을 즐긴다.

스포츠

뉴질랜드는 영연방의 일원으로 럭비,크리켓 그리고 넷볼 같은 영국식 스포츠가 성하다. 특히 럭비는 뉴질랜드의 국기이고, 국가대표 럭비 팀은 “All Blacks”로 알려졌다. 서핑,요트그리고 조정 등도 인기있는 레저이다. 뉴질랜드는 하계 올림픽에서 육상 금메달 총 7개를 딴 바 있고, FIFA 월드컵 본선에도 2회 진출한 바 있다. (1982년에는 3전 전패, 2010년에는 3전 전무로 모두 예선 탈락) 1980년대부터는 육상보다 카누 같은 기타 종목들에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축구 대표팀은 All Whites, 농구 대표팀은 Tall Blacks로 알려져 있다.

종교

뉴질랜드 최대 종교기독교(69.9%)이며, 그중에서도 뉴질랜드 성공회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성공회 24.3%, 장로교 18.0%, 가톨릭 15.2%이다.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이 쇠퇴하고 성공회장로교를 중심으로 복음주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다.

관광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과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서,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포츠 급류타기, 제트 보트, 스키, 트레킹, 번지점프 등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며, 자연의 부드러운 숨결을 닮은 사람들, 아름다운 황금빛 해변,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 등 모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와이탕기

와이탕기 조약으로 유명한 와이탕기는 뉴질랜드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1840년 영국 왕실과 마오리 쪽의 대표가 이 곳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영국 왕실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가 되었다. 조약이 체결된 ‘트리티하우스’는 당시 영국 거주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 지역의 명소 중 하나이다.또한 와이탕기에는 여러 부족들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37m의 거대한 마오리 공화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와이탕기 기념일인 매년 2월 6월 마오리 청년들이 마오리 전통 카누를 띄워 축제를 즐긴다.

전쟁기념 박물관

오클랜드시에 있는 이 박물관에서는 마오리족의 문화유산 및 남태평양 일원에 흩어진 원주민의 문화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동식물 및 광물자원을 비롯하여 정작 초기 백인의 이주생활 및 해양문화 등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고, 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사람들의 자료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구성은 1층 마오리 홀, 2층 뉴질랜드 자연사 박물관, 3층 전쟁기념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케리케리

파이히아에서 북쪽으로 약 33㎞ 떨어진 곳에 그림같은 케리케리가 있다. 뉴질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케리케리는 감귤, 키위농장과 공예품의 중심지로 특히 도자기나 직물 등이 유명하다.

달 분화구 지역

달 분화구 지역(Craters of the Moon)은 지면 여러 곳에서 뜨거운 증기가 솟아오르면서 마치 달의 분화구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주변 일대가 온통 수증기로 가득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진흙 자체가 끓는 곳도 있으며 특히, 비가 온 뒤에는 더욱 많은 수증기가 솟아오른다.

번지 점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번지점프 시설이 와이카토 강이 굽이쳐 흐르는 67m 절벽 위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설치되어 있다. 번지점프의 유래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성년식때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발목에 줄을 묶고 뛰어내리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와카레와레와 온천지

와카레와레와 온천지(The Whakarewarewa Thermal Reserve)는 로토루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마오리족의 마을 내에 위치한 최대의 온천지이다. 특히, 간헐적으로 유명한 곳은 Prince of Wales Feathers Geyser와 Pohutu Geyser로 포후투 간헐전(Pohutu Geyser)인 경우는 약 20분 간격으로 20∼30m 높이까지 뜨거운 온천수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 오른다.

아그로돔

아그로돔(Agrodome)은 뉴질랜드의 양 사육과 관리 등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매일 3회에 걸쳐 19종의 양을 볼 수 있으며 양털깎기쇼, 양몰이 개의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쇼를 진행하는 사람의 유모와 재치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으며 설명은 세계의 언어로 통역되는 이어폰을 주기 때문에 듣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로토루아 호수

로토루아 호수(Rotorua Lake)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호수로 로토루아 내에 있는 9개의 호수 중에서 가장 크며 많은 송어를 비롯한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낚시를 즐기는 곳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잡힌 송어에서 기생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서 주춤해지기도 했다. 유람선과 수상스키를 즐길수 있다.

레드우드 그로우브

레드우드 그로우브(Redwood Grove)는 로토루아 근교에 자리한 임업 시험장으로 세계 각국의 나무들이 식수되어 있다. 세고비아 나무를 비롯하여 잣나무, 이끼다 소나무 등이 울창하게 자리하고 있어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이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저절로 삼림욕이 되는 쾌적한 곳이다.

와이토모 동굴

와이토모 동굴(Waitomo Cave)은 개똥벌레의 일종인 그로우웜(Glow Worm)이 서식하고 있는 동굴로 동굴 아래 냇물이 흐르고 있어 배를 타고 그로우 윔을 관광한다. 어두컴컴한 곳에 가면 개똥벌레가 마치 밤하늘의 은하계를 보는 것과 같이 촘촘히 빛나 신기함을 더해 준다. 와이토모란 마오리어로 물과 동굴을 뜻하며 우기에는 동굴에 흐르는 냇물이 증가하여 배를 타고 동굴 안을 관광할 수 없다.

 

파푸아 뉴기니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영어: 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톡 피신: Papua Niugini
(국기)(국장)
표어: Unity in Diversity
국가: O Arise, All You Sons
수도포트모르즈비
9°25′00″S 147°17′00″E / 9.416667°S 147.283333°E / -9.416667; 147.283333
공용어영어, 톡 피신, 히리 모투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엘리자베스 2세
폴리아스 마타네
마이클 소마레
독립
 • 독립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1975년 9월 16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462,840㎢ (53위)
2%
인구
 • 2005년 어림
 • 인구 밀도
 
5,887,000명 (104위)
11명/㎢ (172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133.2억 (132위)
$2,400 (171위)
HDI
 • 2006년 조사

0.516 (149위)
통화키나 (ISO 4217:PGK)
시간대
 • 여름 시간
AEST (UTC+10)
(UTC+8 ~ 11) 
ISO 3166-1 598
ISO 3166-1 alpha-2 PG
ISO 3166-1 alpha-3 PNG
인터넷 도메인.pg
국제 전화+675

파푸아 뉴기니(영어: Papua New Guinea 패퓨어 뉴 기니, 톡 피신: Papua Niugini 파푸아 니우기니, 문화어: 파푸아뉴기네아)는 오세아니아의 나라이다. 인도네시아와 접하며 수도는 포트모르즈비(톡피신어로는 '포트 모스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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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 땅에 사람이 최초로 정착한 것은 5만 년 전으로 보인다. 이 최초의 정착민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약 9천 년 전에 뉴기니의 고원지역에서는 농업이 발달하며 이 지역은 자체적으로 작물화를 성공시킨 몇 안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들은 약 2500년 전에 도자기, 돼지, 그리고 몇몇 고기잡기 기술을 섬에 도입하며 이주해 왔다.

유럽인 선원이 최초로 섬을 방문한 것은 16세기였으나 19세기 초까지도 서구에는 이 섬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파푸아"라는 이름은 말레이어로 멜라네시아인들의 곱슬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뉴기니라는 이름은 에스파냐의 선원 Yñigo Ortiz de Retez이 1545년에 뉴기니 주민들이 아프리카 기니 만 연안의 주민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붙인 것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북쪽 절반은 19세기 말에 독일령 뉴기니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이 지역은 다시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 점령되었다. 파푸아 뉴기니의 남쪽 절반은 영국령 뉴기니로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오스트레일리아에 1905년 이양되어 파푸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은 옛 독일령 뉴기니에는 대표를 허락한 반면 파푸아는 외부 영토로 간주되어 대표가 허락되지 않았다. 파푸아는 공식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부영토로 되어 있었으며 이는 1975년의 독립 이후 사법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옛 독일령 뉴기니와 파푸아의 차별화된 법적 상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배가 일원화된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을 각각 별개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두 영토는 파푸아로 통일되었으며, 이후에 "파푸아 뉴기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파푸아 뉴기니는 1975년에 독립했다.

부건빌과 북솔로몬 문제

현재 파푸아 뉴기니의 부건빌 주북솔로몬 제도1997년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켜 1998년에 종결되기까지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뒤 자치령이 되었다. 현재 부건빌 자치령의 대통령은 조세프 카부이이다.

지리

이 나라는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육지국경이 존재한다.

행정 구역

파푸아뉴기니의 주

파푸아 뉴기니는 19개의 주, 1개의 수도권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각 주는 독자적인 입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각 주는 다시 지역구와 지역 정부로 나뉘는데, 한 지역구에 몇 개의 지역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

이 나라는 영국군주를 모시는 상태에서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기후

전형적인 몬순 기후로 무덥고 습하고 일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린다. 대부분 지역에서 우기는 12월~3월이고 건기는 5월~10월이다. 4월과 11월은 환절기로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고 보통 끈적 끈적하고 불쾌한 기후를 보인다. 래(Lae)와 알로타우(Alotau)는 예외적으로 5월~10월이 우기이다. 해변 연안은 일년 내내 비교적 일정(섭씨 25~30도)한 기온을 보이지만 습도 및 바람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민

파푸아 뉴기니의 민족은 크게 멜라네시아계, 미크로네시아계, 폴리네시아계로 나뉘며, 그 외에 중국계, 유럽계, 오스트레일리아계도 소수 분포하고 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는 865여 종 이상의 지역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언어 하나당 평균 사용자 수는 7천 정도이다. 이 언어들은 파푸아 제어, 멜라네시아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크게 나뉜다. 인구대 비교를 해볼 때 파푸아 뉴기니보다 언어구성이 더 복잡한 나라는 오직 바누아투뿐이다.

언어

헌법에는 공용어에 관한 명문규정은 없다. 단 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영어가 공용어이며, 영어, 톡피신어, 히리모투어는 세 국민어다. 영어는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포트 모스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톡피신어는 파푸아 뉴기니의 중북부 및 섬, 그리고 포트 모스비에서 널리 사용되며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통하는 공용어이다. 톡 피신은 의회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며 많은 신문들이 톡 피신으로 출간되고 있다. 히리모투어는 주로 남부에서 사용된다.

종교

파푸아 뉴기니는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96%가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많은 주민들이 기독교와 토착종교의 혼합된 종교를 믿고 있어 예배의 절차와 같은 점에서 지역 및 문화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파푸아 뉴기니의 주요 기독교 종파들은 다음과 같다.

현재 파푸아뉴기니에는 언어학신학을 공부한 성서번역선교사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WBT(세계 성경번역 선교회)와 WBT의 한국지부인 GBT(성서번역선교회)에 속해 있는데, 아직 언어가 없거나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경이 없는 부족을 위한 성경을 번역한다.

오순절교회 및 소규모 다양한 기독교 계통의 컬트 역시 존재하는데, 심지어는 성적으로 문란한 사이비종교도 존재한다고 한다.

기독교 외의 종교로는 바하이(약 15000명)와 이슬람(2000명)을 들 수 있다. 비전통적인 기독교 교회와 다양한 종교집단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슬람 및 유교의 선교사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푸아 뉴기니의 전통적인 종교는 일반적으로 애니미즘조상숭배다.

경제

문화

파푸아 뉴기니의 문화는 다원적이며 복잡하다. 파푸아 뉴기니에는 1000여 개의 독자적인 문화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다양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예술, 무용, 무기, 복식, 노래, 음악, 건축 등의 형태가 생겨났다.

이 문화 집단들의 대부분은 독자적인 언어를 갖고 있으며 마을 단위로 농업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 식생활의 균형을 위한 사냥 및 야생 식물의 채집이 현재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농사와 수렵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경제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엥가 주 고원 지역의 주민들은 고로카에서 "싱싱(singsing)"이라 불리는 축제를 여는데, 화려한 화장을 하고 깃털, 진주, 동물 가죽 등으로 토템으로 분장하여 음악과 함께 전설적인 전투와 같은 역사적, 신화적 사건들을 재현하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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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wealth of Australia
(국기)(국장)
표어: (없음)
국가: 오스트레일리아여, 힘차게 전진하라!1
수도캔버라
35°18′29″S 149°07′28″E / 35.308056°S 149.124444°E / -35.308056; 149.124444
최대 도시 시드니
33°51′36″S 151°12′40″E / 33.859972°S 151.211111°E / -33.859972; 151.211111
공용어(사실상) 영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엘리자베스 2세
쿠엔틴 브라이스
줄리아 길라드
독립
 •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1901년 1월 1일2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7,741,220㎢ (6위)
1%
인구
 • 2008년 어림
 • 2001년 조사
 • 인구 밀도
 
21,260,000명 (53위)
18,972,350명
2.6명/㎢ (224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6년 어림값
$6749.7억 (17위)
$32,220 (14위)
HDI
 • 2006년 조사

0.965 (4위)
통화달러 (ISO 4217:AUD)
시간대
 • 여름 시간
사실상 (UTC+8~11)
사실상 (+9~11.5) 
ISO 3166-1 036
ISO 3166-1 alpha-2 AU
ISO 3166-1 alpha-3 AUS
인터넷 도메인.au
국제 전화+61
1왕가(王歌)는 God Save the Queen이다.
21931년부터 웨스터미니스터법이 적용되었고, 1986년에 독자적인 헌법을 보유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도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는 태평양의 남서쪽 대륙에 있는 영국 연방에 속하는 나라이다. 정식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다. 한문으로 음역한 '호사태랄리아'를 줄인 호주(濠州)라는 이름도 널리 통용된다. 어원은 라틴어 오스트랄리스(남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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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몇만 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인 애버리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고대 인류와 DNA가 가장 비슷한 종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이 나라의 역사는 17세기경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이 나라를 목격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1770년영국의 선장 제임스 쿡이 본격적으로 이곳을 탐험한 이래, 1901년 1월 1일에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얼마 후에 군대가 창설되었다. 1931년 12월 11일부터 웨스터민스터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의 접촉, 그리고 최초의 영국인 정착자들에 관한 문제들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호주 원주민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애버리진은 현재로부터 약 5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바다가 얕아진 사이에 동남아로부터 배를 타고 호주로 도착하였다. 그 후 2~4만 년간 간빙기가 오면서 다른 대륙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자신만의 문화를 구축하게 된다.

처음 유럽인들이 호주를 발견했을 때 약 100만 명의 원주민들이 300여 개의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 개의 방언을 쓰며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부족들은 각자 고유한 토템을 갖고 있었으나, 드림타임에 대한 전승은 대개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유럽인들의 발견

17세기에 네덜란드의 모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하자 연안(沿岸) 탐험을 실시하여 ‘신(新) 네덜란드’라 명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들에게 발견될 당시 약 100만명의 애버리진과 300여개의 부족국가가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개의 방언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네덜란드인의 탐험활동은 동인도 회사의 사업의 일환으로서 실시되었는데 경비가 가중되고 이익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1699년 영국의 해적(海賊) 윌리엄 댐피어(William Dampier)가 신네덜란드의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보고는 비관적인 것이어서 그 후 탐험열이 냉각되었다. 트레스 등의 탐험가가 그 일부를 바라본 데에 그치기도 하였다. 1769년 태평양에서의 금성(金星) 관측에 참가했던 제임스 쿡(James Cook)에 의해서 타히티, 뉴질랜드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의 탐험이 실시되어, 그곳의 일대를 ‘국왕의 이름과 국왕의 깃발 아래’ 점령하고, 뉴사우스웨일스(영국 웨일스에서 연유)라고 명명했다. 쿡은 그 보고서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업 개발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때부터 이 땅이 하나의 대륙으로서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는 얼마 뒤 그리스의 철학자가 생각했던 남쪽대륙(테라아우스트라리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주

영국의 죄수 폭증과 미국 독립혁명(1776년)으로 뉴사우스웨일즈주에 새로운 유형(流刑)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1788년 1월 26일, 필립이 이끈 11척의 배에 1500명의 인원이 탑승한 첫 함대가 시드니 항구에 도착하고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건설을 시작하였다. 식량의 자급 태세를 갖추는 일이 당초의 급선무였으나, 미지의 풍토에서 농업 경험자가 적었던 관계로 개발은 진척되지 않았다. 마지막 죄수 호송인 1868년까지 약 16만 명에 달하는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호송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179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자유 정착민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하였다.

골드 러쉬

어느 정도 개발이 진척되자, 시드니(Sydney) 서쪽에 급사면을 맞대고 솟아 있는 동부 고지의 일부를 이루는 산들이 식민지의 전면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이 산들을 넘어가는 길이 발견되고, 산지 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농목의 적지에 개발의 손이 뻗쳤다. 즉 1850년대에 골드 러시(Gold rush)의 시대가 됐다. 배더스트(Bathurst)·밴디고·밸라랫(Ballarat) 등에서 발견된 금을 찾아서 사람들이 쇄도하였다. 빅토리아주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시작된 금광시대는 중국부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1850년의 40만 인구는 10년 후엔 115만, 30년 후에는 223만으로까지 증가하였다. 직접 금을 찾는 사람 이외에 기술자·장사꾼도 모여들어 이 대륙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자, 이 대륙 내에 성립되고 있던 6식민지간의 물자 교류 및 본국과의 교역도 왕성해졌다. 영국 식민지 총독은 가혹한 세금 및 결정을 내리고, 결국 1854년 유레카 감옥에서 유혈 투쟁이 일어난다. 이를 유레카 혁명 이라고 한다. 현재 멜버른에 있는 유레카 타워는 이 유레카 혁명을 기념한 것이다. 1880년대 시드니와 멜버른의 세련된 현재적인 모습은 이 금광시대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새로운 국가로 독립

1901년 1월 1일[출처 필요]에 6개의 식민지 연합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로 독립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1900년[출처 필요], 20세기의 첫날을 기하여 각 식민지는 각 주로 재출발함으로써, 이 땅에 영연방(英聯邦) 내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결성하였다.

세계대전 참전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국민들 약 40만 명 정도가 참전하였고 그 중 약 6만 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진다. 현재도 안작(ANZAC)은 중요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중 하나이다. 이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61,928명 전사), 제2차 세계대전(39,400명 전사), 한국 전쟁(339명 전사), 베트남 전쟁(520명 전사)에 참전하였다. 그 때문에 ANZAC (Australia & New Zealand Army Corps)은 아주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웬만한 동네에는 Anzac Hill이 있을 정도로 일상에 파고 들기도 한다. 매년 4월 25일이다.

자연 환경

지리

적도 남쪽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동서 약 4,000㎞, 남북 약 3,200㎞에 이르며, 총 면적은 7,686,850㎢로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78배) 기복이 많지 않은 단조로운 평면형을 보이고 있다. 지형·지질상으로 보아 이 대륙은 동부 고지·중앙 저지·서부 고원(西部高原)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2] 오스트레일리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 그리고 태즈메이니아 섬,그 외의 많은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7,617,930㎢에 달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는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 위에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평균 고도가 340 미터로 전대륙 중 가장 낮다. 고도별 빈도 분포에서는 200~500 미터에 해당하는 면적이 42%에 이른다. 즉, 호주 대륙은 낮은 대지가 넓게 퍼져, 기복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동남쪽에는 남북 방향으로 고기 조산대의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이 뻗어 있다. 최고봉은 수도 캔버라의 남남서 120km 지점에 우뚝 솟은 코지어스코 산(2,230m)이다. 이 근처는 호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형으로 겨울에 눈이 오는 유일한 지형이기도 하다. 더욱 동쪽은 온난 습윤기후, 서안해양성 기후인 데다가 물을 찾기 쉬워 인구 밀도가 높다.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과 같은 대도시는 모두 이 지역에 분포해 있다. 대분수산맥의 서쪽은 건조한 스텝 기후의 대찬정 분지이지만,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므로, 소, 낙타 그리고 양을 방목하고 있다. 대찬정 분지보다 더욱 서쪽은 그레이트샌디 사막,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깁슨 사막 등의 사막이 퍼져있어, 인구 밀도가 매우 낮다. 노던 테러토리 준주 지역이다. 대륙의 서해안에는 퍼스가 있는 정도이다.

대륙의 북부는 열대우림 기후 또는 열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며, 카카두 국립공원으로 유명하다. 다윈이 중심이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초로 이루어진 그레이트배리어리프가 관광지로 유명하다. 케언즈가 이 지역의 관광 거점이다.

노던 준주에 있는 에어즈 락은 세계유산으로 인정된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에서는 석탄이, 대륙의 북서부에서는 철광석이, 서부에서는 금이 산출한다. 대륙 북부에서는 보크사이트우라늄이 나온다.

동부 고지

동부 고지는 대륙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초승달 모양의 지역을 차지하며, 대륙의 속도(屬島)인 태즈메이니아 섬도 같은 성상(性狀)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은 고기조산대(古期造山帶)에 속하는 오래된 습곡산맥이 중평원 작용으로 완만한 지형을 보이는 파상지(波狀地)화하고, 그후 제3기의 단층·요곡(撓曲) 등의 지각운동으로 융기(隆起)한 곳이다. 고지라 해도 고도는 비교적 낮아 300∼1,000m 정도 되는 곳이 많으며, 앞서 말한 토지의 성격을 반영하여 정상부는 융기 준평원으로서 기복이 작은 고원상의 토지를 보인다. 그러나 가장자리, 특히 동쪽 가장자리에는 토지의 융기에 따라 회춘한 하천이 깊은 계곡을 파는 일이 많으며, 가파른 산곡 사면과 완만한 산정부를 갖는다.이 동부 고지는, 그 지리적 위치로 보면 현저하게 동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그 일련의 고지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남태평양 방향으로 유입하는 것과 서쪽의 중앙저지 방면으로 흐르는 것으로 나뉘어지므로,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이라고도 불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알프스 산맥이라고 불리는 산지는 대륙의 남동부에 동부고지의 일각을 차지하며, 지루산지(地壘山地)로서 주변의 산지보다 한결 높아서 대륙의 최고부를 형성한다. 주봉(主峰) 코지어스코 산은 해발 2,234m이며, 주변엔 빙하시대에 형성된 권곡(圈谷)이 존재하나. 알프스라는 이름에서 받는 고산형 인상과는 아주 먼 완만한 산형(山形)이 탁월하다. 이 부근은 일명 스노이 산맥(Snowy山脈)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설이 많고 한여름에도 잔설(殘雪)이 있으며, 대규모의 수자원 개발이 진척되고 있다.

중앙저지

에어호

중앙저지(中央低地)는 동서로 긴 대륙 전체에서 보면 동쪽으로 좀 치우친 위치에, 대륙의 북쪽 해안에 크게 만입하는 카펀테리아만(Carpentaria灣)의 깊은 곳으로부터 대륙의 남쪽 해안에 완만한 호(弧)를 그리며 얕게 만입하는 오스트레일리아만의 동쪽 가장자리 방면에 걸쳐서 대륙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일대 저지대이다.해발고도는 200m 이하로 100m가 못되는 지역이 넓고, 에어호(Lake Eyre) 주변에는 해면하(下)의 지역도 있다. 중앙저지의 동남부·남부는 이 대륙에서 가장 큰 강인 머리강(Murray江)·달링강(Darling江) 수계(水系)의 유역이고, 북부는 카펀테리아만으로 흐르는 여러 강의 유역인데, 중앙부에는 낮은 산맥에 의해서 달링강 유역과 격리된 대규모의 내륙유역이 있다.

대찬정분지

대찬정분지(大鑽井盆地): 중앙저지의 중앙부는 내륙유역으로서, 에어호에 구심적으로 유입하는 여러 강의 유역이 최대이며, 그 남쪽에는 프루움호(Frome湖) 유역·토렌즈호(Torrens湖) 유역이 접해 있다. 내부유역의 하천은 말할 것도 없고 달링강과 같이 큰 하천까지도 유수(流水)를 보기가 드문 간헐하천(間歇河川)이 되고 있다. 지질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심한 지각운동을 받는 일이 없고, 고생대 말 이래의 지층이 퇴적되어 분지상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동부고지 방면에서 지표에 노출하는 다공질(多孔質) 지층은 중앙 저지의 중앙부에서는 지표하 수백m의 깊이에 존재하나, 동부고지 방면의 강수의 일부는 그 지층에 삼투(渗透)하여 중앙저지(中央低地) 방면에서 피압지하수(被壓地下水)로서 깊은 곳에 부존(賦存)하고 있다. 그래서 불투수층(不透水層)을 관통하여 대수층(帶水層)에 이르는 굴착우물에 의해서 지하수의 분출을 보게 된다.

서부 고원

서부고원(西部高原)은 중앙 저지의 서쪽에 펼쳐진다. 면적상으로는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인데, 해발고도는 300∼700m이고, 전체적으로 기복이 거의 없다. 지질적으로는 선캄브리아 시대의 기저 암반으로 이루어지며,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준평원화되어, 방패[楯]을 엎어 놓은 듯한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이는 데서 오스트레일리아 순상지(楯狀地)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완전히 한결같다는 것이 아니라, 중앙부에서는 맥도넬 산맥(Mac Donnell 山脈)이 돌출하고 해머슬리(Ham­ersley)·킴벌리(Kimberley)·바클리(Barkly) 등 대지(臺地)를 싣고 있다. 지역의 태반은 건조기후 아래 있으며, 북부지역·서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유로도 없고, 중앙저지에는 심프슨 사막(Simpson砂漠), 중앙부엔 그레이트샌디 사막(Great Sandy 砂漠)·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Great Victoria 砂漠)이 펼쳐져 있다.

기후

기후의 특색은 그 건조성에 있다. 내륙부는 물론 서쪽 가장자리에서 남쪽 가장자리의 임해부(臨海部)에 걸쳐 반사막의 식생이다. 한편, 남회귀선이 국토의 중앙을 동서로 종단(縱斷)하고 있어, 위도상으로는 국토의 39%가 열대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은 지역이 많다. 대륙의 동북 연안부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강우량이 많고 열대우림을 이룬다. 동남부는 온대 해양성 기후하에 있어 인류에게 쾌적한 기후환경을 보이며, 이 대륙에서의 인구분포의 중심지대를 이룬다. 대륙 남쪽 가장자리의 애들레이드(Adelaide)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대륙의 서남지역은 온대 동우(冬雨)의 지중해성 기후이다.열대에 속하는 대륙의 북쪽 지역에는 우계와 건계의 교체가 뚜렷한 사바나 기후가 탁월하며, 내륙으로 감에 따라 사막을 둘러싸는 스텝기후(초원기후) 지역으로 변해 간다.

식생

기후의 특성에 따라 식생에 특징있는 변화가 보이는데, 유카라와 아카시아는 가장 탁월한 수종(樹種)이다. 동물에 있어서는 캥거루·코알라·오리너구리 등의 특이한 동물의 분포를 보이며, 이 대륙의 격절성(隔絶性)의 일단을 나타낸다. 선사시대부터 오래도록 다른 대륙과 격리되어 오면서 호주의 동물계는 세계의 다른 동물과는 다른 계통을 따라 진화되었다. 그리하여 이 대륙에서는 유대류가 태반에서 태아를 키우는 포유동물을 대신하여 번성하게 되었다.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흔한 유대류인 캥거루는 약 90종이 있는데, 크기가 2.5미터나 되는 붉은캥거루로부터 불과 20센티미터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쥐캥거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호주 고유의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캥거루도 초식동물이며, 성질이 온순한 코알라는 유칼립터스 나무 위에서만 산다. 예외적으로 ‘태즈메이니아 데블’이라고 하는 개처럼 생긴 육식동물이 있는데, 이 동물은 호주 본토에는 없고 섬에만 살고 있다.오리 부리를 한 오리너구리는 알을 낳는 수생(水生) 포유동물로서 독특한 유대동물이다. 역시 호주에만 생존하는 이 동물은 두 종류의 바늘두더지(spiny anterater)와 더불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된 포유동물의 한 목(目)으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정치

제27대 연방총리 줄리아 길라드
제15대 연방부총리 웨인 스완
제31대 범야권지도자 맬컴 턴볼

이 나라는 영연방 소속국가들의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한 1942년 웨스트민스터 법(Statute of Westminster Adoption Act 1942)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원수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추천을 받아 그가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입헌 군주제를 명목상 채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헌법1986년 3월 3일에 제정되었다. 영국식 의회제도를 채택하여 상하 양원으로 구성되는 연방의회가 있다. 도시의 산업가 층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당, 지방의 농목업자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이 3대 정당을 이룬다. 세계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최초로 내각을 조직한 일도 있다. 1996년 3월 총선에서는 야당인 자유·국민당연합이 압승했다. 현재 실권자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줄리아 길라드 제27대 연방총리로서, 2007년 11월 24일에 치러진 총선거에서 존 하워드가 이끌던 오스트레일리아 보수연립에 승리하여 2007년 12월 3일에 부총리로 취임하였고 2010년 6월 24일 총리로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주 정부에 한정된 권한은 교육제도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크지만, 연방 전체에 관여하는 외교·국방·무역·금융 등은 연방정부의 권한에 속한다. 외교·군사면에서 전반적으로 모국인 영국의 영향이 후퇴하고 미국과의 유대가 강화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에 가맹했고, 베트남에 파병한 바도 있다. 미국·뉴질랜드와의 사이에 공동 방위체제를 갖는 앤저스(ANZUS)조약을 맺고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국가(國歌)인 Advance Australia Fair(오스트레일리아여, 힘차게 전진하라!)는 1984년에 제정되었다.

국가체제 전환 논의

1999년, 폴 키팅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영연방 완전독립 지지자들의 요청으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이 나라의 군주제 폐지 및 체제 전환이 논의되었으나, 과반수(약 54%)가 전환에 반대하였다. "영국과의 우호" 및 (독립시 도입할)정치체제간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2007년 1월의 여론조사(Newspoll 조사)에서는 45% 대 36%(19%는 무응답)로 공화국 전환에 찬성, 전세가 역전되었다.

연방상원

호주연방상원(The Australian Senate)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위입법기관으로, 정식으로 연방에 가입한 6개 주에 12명씩, 그리고 준주지역에 2명씩 대표의석을 할당하는데, 각 주를 선거구로 놓고 경쟁하는 대선거구제 방식을 취하며, 정당득표수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므로 군소정당에 다소 유리하다. 2007년 현재의 총의석수는 76명이다. 임기는 6년이며, 매 총선거마다 과반수(2004년 36석, 2007년 40석)가량의 의석을 교체한다. 현재 구성(정당별, 2011년까지 임기 기준)은 다음과 같다.

연방하원

호주연방하원(The Australian House of Representatives)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하위입법기관이다. 그러나, 상원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영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다수당 지도자, 즉 연방총리가 국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연방하원의 소수당 지도자는 '범야권의 지도자'(Leader of the opposition)로서 총리와 상호간 정책토론을 하며 주로 대립각을 세우나, 간혹 중요 국가적 정책사안에서는 긴밀히 협력한다.

전체 의석수(2007년 현재 150석, 정부구성을 위한 과반수는 76석)를 각 지역별 인구에 비례하여 배분한다. 영국과 유사한 소선거구제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1번, 그 후 차선으로 지지하는 후보들에 번호(등급)을 매겨 모든 후보들에게 기표하는 '선호투표(제)'에서, 최초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지지를 획득했거나, 과반 이상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다득표를 기록한 '최후의 2인' 중 가장 많은 지지(1차투표에서 과반이상 득표-하면 그대로 당선-자가 없으면 2차선호, 3차선호 등을 거쳐 가장 많은 선호를 차지하는 경우)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양당제 정치문화의 발전과 전체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군소정당들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200711월 24일에 열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1년간의 야당생활을 끝내고 케빈 러드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새 연방하원의회는 2008년 2월 12일에 업무를 공식 개시하였다.(그 최종 구성은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국회의원 총선거를 참조할것)

행정 구역

괄호는 약칭으로, 우편번호 등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준주

대외 관계

이 나라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에도 양국이 같이 참전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한국 전쟁 때 339명이 전사했고, 베트남 전쟁 때 520명이 전사했다.

현재는 북한과도 수교하고 있는 상태이다.

일본과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미국-오스트레일리아 간 방위 최고위급 회담이 행해진 적도 있고, 경제, 군사, 외교 등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2007년 3월에는 자위대와 오스트레일리아군이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PKO활동)의 공동훈련, 반테러활동, 지진, 해일 등 지역재난에 대해 협력하여 담당한다는 것 등을 담은 공동선언(안전보장협력에 관한 일본-오스트레일리아 공동선언)에 조인하였다.

군사

1901년에 창립된 군의 정식 명칭은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Australian Defence Force, 약칭 ADF)'으로서 해군(Royal Australian Navy, 약칭 RAN), 육군(Australian Army), 공군(Royal Australian Air Force, 약칭 RAAF)을 아우르고 전체 병력은 약 51,000 여명에 이른다. 이 나라의 군사는 지원병제로 선발된다. 군병력의 거의 대부분은 국제연합의 평화유지 임무, 재난 구호, 국제적 무력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동티모르솔로몬 제도 그리고 수단에 파병된 것을 들 수 있다.

경제

오스트레일리아는 국토가 넓고 기후가 다양하여 천연 자원이 많다. 이 자원들을 그대로 해외에 수출하거나, 또는 이를 가공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광 산업 또한 발전하고 있다. 이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곧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양·밀 및 원야(原野)에서 뛰어다니는 캥거루 등이다. 이것은 아무리 자원의 개발이나 공업화가 진척되어도 아직도 농목업이 이 나라 경제의 기반이 되어 있고, 경제활동의 분포는 인구분포와 마찬가지로 현저하게 대륙의 동남 지역에 편재하며, 원야인 채로 남겨진 공백의 토지로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옳은 일이다. 그러나 농목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최근 급격히 변해 가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목축업

목축업은 이 나라 산업의 중심이다. 목양은 식민 당초부터 도입된 메리노종(種)을 중심으로 하여 대륙 북부의 열대기후 지역과 중앙부의 극단적인 건조 지역을 제외하고 널리 행하여지고, 양모의 산출액은 세계 생산량의 3분의 1을 넘어 세계 제1위이다. 육우(肉牛)는 양보다도 고온인 대륙 북부지역이나 내륙에도 방목되며, 또한 연안부의 다습지역에도 분포한다. 젖소(乳牛)는 동부·남부의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인구 집중지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분포를 한다. 방목에 적합한 자연을 가진 넓은 국토, 과소한 인구로 하는 개발,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본국의 왕성한 양모의 수요, 대찬정분지의 지하수 개발, 냉동선의 발명 등에 의해서 오늘날의 이 나라의 목축은 발전해 왔다. 국토의 약 66%가 농목지인데 그 중에 90%가 방목지이다.

농업

농업은 밀을 중심으로 하여 매우 왕성하다. 신식민지의 식량 자급을 목표로 하여 시작되었던 밀의 경작도 오늘날에는 세계 유수의 생산국으로서 알려져 있다(밀생산고 1,680만t). 밀 지대는 최적의 자연적 조건을 갖는 지역에 합치하여 출현하였는데, 대륙 동남부·동부 고지의 내륙쪽을 따라서 분포하며, 또한 내륙 서남부의 일각도 차지하고 있다.

광업·자원

광업에 관해 보면, 국토엔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각지에서의 금광 발견이 이 나라 경제 발전의 일대 계기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밖에 납·아연·철·보크사이트·석탄·갈탄 등도 산출되며, 납은 세계 제3의 산출량이 있다. 광산자원 중에서 과거에 산출되지 않던 석유와 천연가스도 개발이 진척되어 채굴되고 있다.

공업

공업은 전반적으로 침체하고 있다. 1차산품을 수출하여 필요한 완성품을 수입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식민지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더욱 공업화가 촉진되어, 외부에서 보는 이 나라의 인상과는 반대로 공업생산액은 제1차산업의 생산액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기간산업으로서의 철강업과 급속히 발달한 자동차공업 등 중공업의 발전도 눈부시다. 그러나 자원의 편재·높은 임금·좁은 국내시장 등이 문제점으로 되어 있다.

무역

20세기 초기까지 수출의 70%는 영국 본국을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마다 대영(對英) 의존도는 감소하여 1970년대에는 4% 정도가 되었다. 수입국에 있어서도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수입 총액의 40∼50%를 차지하였으나 1970년대에 23%로 떨어졌다. 이에 대신하여 미국, 일본, 독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였고 EU 국가와 캐나다로부터의 수입도 늘고 있다.

교통

넓은 국토 중에서 인구가 집중하고 경제활동이 왕성한 지역이 현저하게 편재하므로, 교통 사정도 이를 반영하여 지방에 따라서 교통로의 소밀(疏密)이 현저하다. 그리고 국토의 개발이 구식민지 이래의 전통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행하여졌으므로, 철도 궤도의 폭이 각주마다 달라서, 주 경계에서 갈아타는 데 불편하다. 시드니-멜버른 간에 직통열차가 다니게 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자동차의 보유율이 높아서 자동차 교통이 왕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항공로도 현저하게 발달하여 국민 1인당의 항공기 이용률은 세계 제1위이다.

사회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석기시대와 똑같은 수렵생활을 영위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식민지 당국은 그 노력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하여 순혈종의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에서 보호 생활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주민 구성을 생각할 때 원주민은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주민은 모두 최초의 선대 이래 도래한 사람들이며, 현재 총인구 약 1,973만 중 96%가 유럽계 백인으로 구성되어 명실공히 ‘백인의 천하’라 해도 좋겠다. 그 중 영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아 90%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를 꾀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급속한 자원 개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고, 또한 1930년대의 저(低)출생률에 기인하는 인구 구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이민 수용정책이 채용되었다. 이탈리아·그리스·네덜란드·독일 등지로부터의 이민이 많다.한편 골드러시 때의 중국인 채광부와의 사이에 일어난 노동력의 덤핑·생활 정도의 저하 등의 문제가 얽혀서 발생한 백호주의(白濠主義)의 정책이 최근까지 채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여론과 아시아로 눈길을 돌린 이 나라의 입장 등으로 백호주의 정책이 파기되었다. 국어는 영어이다.

민족

애버리진이 사용하는 도구

원주민 탄압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며, 원주민 보호 구역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어보리진도 분포한다. 태즈메이니아지역의 애버리진은 호주가 영국식민지가 되면서 백인들의 '인간사냥'으로 전멸당하고 말았으며, 호주의 애버리진들도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약 40년간의 호주정부의 원주민 말살정책으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백인 가정으로 입양당하거나 강제수용당했다. 원주민들의 인권을 짓밟은 호주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은 《리더스 다이제스트한국어판에 강제수용당한 원주민 소년이 탈출하여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가 실릴 만큼 지식인들의 지탄을 받았으며, 애버리진들도 불행한 자신들의 과거를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 강제 입양이나 수용당한 원주민 어린이들은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우울증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일부는 법정투쟁을 하여, 2007년 9월 1일 호주 역사상 최초로 보상결정이 내려졌다.

캐빈 러드 정부의 사죄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호주정부의 민족말살정책이 이전정권의 일이었다는 이유로 애버리진에 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2007년 12월에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2008년 2월 13일, 범정부차원의 첫 번째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적극적인 사죄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호주정부가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정부주도의 토착민 가정및 사회 파괴행위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힘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가 있다.

백호주의의 폐지

또한 1973년까지 백호주의를 고수하여 흑인의 이민을 제한하였으나,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가 나타나자 1973년에 백호주의를 전면 폐지하였고, 그 뒤로 인종 차별은 줄어들었다.

언어

영어공용어로 쓰고 있는데, 미국 영어영국 영어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는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언어는 중국어(2.1%), 이탈리아어(1.9%), 그리스어(1.4%) 순이다. 이민 1세대나 2세대의 상당수는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처음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약 200에서 300 개의 토착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약 70개 정도만 살아남아 있으며, 그 중에 20 개는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토착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2%이다.

문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는 전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요 종교는 오스트레일리아 성공회로마 가톨릭이며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실례로 2006년 호주 노동당에서 성공회로마 가톨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학교내 종교교육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출신의 작가인 콜린 맥컬로우의 소설 가시나무새들도 로마 가톨릭을 일부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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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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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호주는 땅이넓은 만큼 자연환경도 다양합니다 호주의 북부는 열대기후로 열대림과 열대초원이 나옵니다 또 호주 서부와 내륙은 건조 지역으로 사막과 초원이 주를 이룹니다 동부지역과 남서부지역은 비교적 날씨가 온화한 온대기후입니다

주요도시. 기후가 온화한 동부지역과 남서부지역에 밀집해있습니다 남서부지역의 도시로는 퍼스 동부지역의 도시로는 시드니 멜버른을 들수있습니다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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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뉴질랜드 춥다 넓을것 같다

파푸아뉴기니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알것같은데 쓰기 귀찮다

뉴질랜드만 알려줌 ㅋㅋㅋ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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