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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사전

판문점

요약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공동경비구역(JSA)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UN과 북한 측 공동경비구역으로 정해진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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板門店(한자)

판문점(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서울 서북쪽 48㎞, 개성 동쪽 10㎞ 지점에 있으며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리에 해당한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UN과 북한 측 공동경비구역으로 정해진, 전후좌우 경계 간 직선거리가 800m에 불과한 좁은 공간이다.

1950년 6·25 전에는 널문(板門)이라는 지명으로,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외딴 마을이었다. 1951∼53년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처음에 이곳에 천막을 치고 시작한 휴전회담은 장장 1년9개월을 끌었고, 휴전회담을 마친 뒤 휴전협정 조인을 위해 부근에 목조건물을 지었으며, 그 후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 1953년 7월 이곳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국제연합 측과 북한 측의 '공동경비구역'이 되었으며, 그해 8∼9월에는 1개월에 걸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판문점은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뿐 아니라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공동경비구역 내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 있다. 군사분계선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내에 놓여 있는 장방형 회의용탁자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마이크선과 이 탁자위에 놓여 있는 유엔기와 북한의 깃발로 상징된다.

이 밖에 남쪽에 ‘자유의 집 ’, ‘평화의 집’이, 북쪽에 ‘판문각’, ‘통일각’이 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는 남북 간 필요한 연락업무를 위해 쌍방의 적십자사가 상설 연락사무소와 직통전화 2회선을 설치해 놓고 있다. 또한 서쪽의 사천(砂川)에는 민족분단의 상징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는데, 이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북한 포로들이 이 다리를 통해 교환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면서 폐쇄됐고, 이후 북측은 '72시간 다리'(다리를 놓는 데 72시간이 걸렸다는 뜻)를 새로 건설했다. 
아울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는 남측지역에는 민간인이 거주하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으며, 자유의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1.8km 떨어진 비무장지대 북쪽 구역에는 북측 ‘기정동 마을’이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8.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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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판문점 한국전쟁 때 1951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유엔군과 공산군간에 휴전회담이 열렸던 곳. 1971년 9월 20일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이 곳에서 시작된 것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 장소만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직접적인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남북 내왕의 통과 지점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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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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