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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혼천의에 대해서
hyem**** 조회수 4,807 작성일2013.10.27
혼천의에대해서 마니최대한정확하게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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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혼천의

(http://ko.wikipedia.org/wiki/%ED%98%BC%EC%B2%9C%EC%9D%98)

 

혼천의(渾天儀)는 천체관측 기구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린다.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국에는 조선 세종때에 도입되었으며, 현종 10년(1669년)에 송이영이 제작된 것이 현전한다.

개요[편집]

혼천의[편집]

천구의

혼천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한나라장형이 만든 것이나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나 수운혼천(水運渾天) 그리고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이나 혼천의상(渾天儀象) 그리고 원나라의 앙의(仰儀), 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교하게 제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했다.

한국에는 문헌상으로 1433년 6월 25일(세종 15년 음력 6월 9일)에 정초, 박연, 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매일 간의대에 숙직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1438년 2월 1일(세종 20년 음력 1월 7일) 장영실에게 흠경각(欽敬閣)을 짓게하고, 이곳에 혼천의를 설치하였다. 이곳에 설치된 혼천의는 기기를 별도로 수동으로 작동하는 일 없이도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기기였다.[1]

혼천시계[편집]

그 후 선조 대를 거쳐 개량을 거듭하여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하는 시계와 인조 때 서양에서 들여온 자명종의 원리와 결합하여 혼천시계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통해 손상되거나 소실되었다.

그러다가 1669년 현종 때 이전의 것들을 개량한 두 종류의 혼천의가 제작되었는데, 바로 이민철과 송이영이 각각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혼천시계와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혼천시계를 만든 것이다. 1631년 인조 9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천리경자명종, 화포 등을 들여왔는데, 1669년 현종 10년 10월 14일 송이영(宋以穎)은 자명종을 참고하여,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시계와 종을 울려주는 자명장치 등이 추가되어, 절기와 계절, 시간까지 알게 해주는 다목적의 시계였다. 구조를 살펴보면 네모난의 나무상자 안에 오른쪽 절반은 시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은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었다. 혼천의에는 눈금이 새겨진 둥근 지평환과 황도환, 적도환, 백도환, 받침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2] 이러한 이민철의 수동(水動)식 혼천시계와 송이영의 기계식 혼천시계는 경희궁에 설치되었으나, 그것도 이전의 혼천의처럼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남아 있는 국보 제230호 혼천의는 1669년 현종 10년 송이영에 의해 만들어진 혼천시계이며, 1930년 인촌 김성수가 구매를 하여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있는 혼천의는 송이영의 혼천시계 중 혼천의 부분만 따로 2.5배 확대한 것이다.

복원[편집]

2009년 8월 18일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은 조선 현종 10년 1669년에 만들어진 혼천시계를 완전 복원하여 상설전시관에 전시하였다. 송이영이 만든 시계 장치는 1657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호이헨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태엽장치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했지만, 태엽장치 대신 추의 상하 운동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시계 바늘을 움직이도록 하여 타종하도록 고안되었다.[3] 원형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2004년 복원되어 서울과학전시관에 전시되었던 복원품을 보완해 새로 만든 것이다.

 

 

 

 

 

한국민족대백과 혼천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8222&cid=1608&categoryId=1608

 

 

일명 혼의(渾儀)·혼의기(渾儀器)·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에 기초를 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제학 정인지(鄭麟趾), 대제학 정초(鄭招)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중추원사 이천(李蕆), 호군 장영실(蔣英實)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료로 목재를 사용하였으나 뒤에 구리로 제작하였다.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穎)이 각각 제작하였다.

효종 때의 혼천의는 시계장치를 연결하여 혼천시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혼천의’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선기옥형’ 또는 ‘기형(璣衡)’이라 불렸다.

기형의 기(璣)는 하늘은 공[球]처럼 둥글다고 생각하고 그 표면에 일월성신의 운행을 설명할 수 있는 천구의(天球儀)를 뜻하고, 형(衡)은 천구의를 통하여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관(管)을 의미하는데, 크기는 ≪서경≫에 따르면 기경(璣經)은 8척, 둘레 25척, 형장(衡長)은 8척에 그 구경이 한치였다. 그리고 ‘혼천의’의 혼(渾)은 둥근 공을 말하는 것으로서 동심다중구(同心多重球)를 의미한다.

구조는 세겹의 동심구면으로 되어 있다. 제일 바깥층에서 중심으로 지평환(地平環)·자오환(子午環)·적도환(赤道環) 등 세 개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평환은 지평에 평행하며 천구를 상하로 양분하며, 자오환은 천구자오선과 일치하는 대원(大圓)을 이루고, 천구북극·천정·천구남극 등이 이 대원상에 있어 지평환과는 지평에서 직각으로 만난다. 적도환은 천구적도와 일치하는 환으로서 자오선과는 직교하나 지평환과는 엇비슷하게 만난다.

이들 세 개의 환이 교착되어 그곳에서의 천구를 알 수 있고, 천구의 상하와 사방을 추측할 수 있다 하여 이 환들을 육합의(六合儀)라 한다. 가운데 층은 황도환(黃道環)과 백도환(白道環)으로 구성되어,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가운데 층을 삼진의(三辰儀)라 하는데 여기서 황도는 태양의 길, 백도는 달의 길을 의미한다.

안쪽 층은 적경쌍환(赤經雙環)·극축(極軸)·규관(窺管)으로 구성되며, 망원경과 같이 천체를 관측하는 규관을 통하여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볼 수 있으므로 사유의(四遊儀)라 한다. 이들 각 층의 각 환에는 필요한 수의 눈금을 표시하여 정확하게 관측하였다.

혼천의는 아침·저녁 및 밤중의 남중성(南中星), 천체의 적도좌표·황도경도 및 지평좌표를 관측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천의 [渾天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혼천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4599&cid=200000000&categoryId=200000902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로 선기옥형, 혼의, 혼의기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에 남아있는 제작기록은 1433(세종 15)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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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

선기옥형(璇璣玉衡)·혼의(渾儀)·혼의기(渾儀器)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던 혼천설에 기초를 두어 BC 2세기경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추론에 불과하나, 삼국 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만들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상으로는 1433년(세종 15) 정초(鄭招)·정인지(鄭麟趾) 등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李蕆)·장영실(蔣英實) 등이 그 제작을 감독하였다. 이로부터 천문학의 기본적인 기구로서 조선시대 천문역법(天文曆法)의 표준시계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되어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가,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穎)이 각각 만들었다. 이중 송이영의 것은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특징을 잘 살펴 추(錘)를 시계장치의 동력으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존된 송이영의 혼천의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혼천의는 두 추의 운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여러 개의 톱니바퀴에 의하여 연결되었는데, 이는 육합의(六合儀)·삼진의(三辰儀)·지구의(地球儀)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육합의는 24향(向)의 글자가 새겨진 지평환(地平環), 수직으로 주천도(周天度)가 새겨져 있는 천경흑쌍환(天經黑雙環), 위로 36° 기운 북극과 아래로 36° 기운 남극에 걸쳐 주천도가 새겨진 천위적단환(天緯赤單環)으로 이루어져, 동서남북·천정(天頂)·천저(天底)를 정하게 되어 있다.

삼진의는 삼진의 흑쌍환(黑雙環)·적도단환(赤道單環)·황도단환(黃道單環), 그 안에 백도단환(白道單環), 제일 안에 양극의 축에 걸쳐 있는 흑도단환(黑道單環) 등으로 이루어졌다. 흑도단환에는 12궁(宮)·24기(氣)와 28수(宿)가 양면에 각각 새겨지고 360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백도단환에는 27개의 못으로 분할하여 28수를 나타냈다. 지구의는 남북극을 축으로 시계장치에 연결하여 1일 1회전하게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천의 [渾天儀] (두산백과)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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