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과 예술의 상생 관계에 대하여

현재 패션과 아트의 만남은 단발적인 이슈를 위한 ‘협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보다 이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패션과 예술의 상생 관계에 대하여.

프로필 by ELLE 2019.06.11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전시 전경.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예술과 연관이 깊은 루이 비통의 행보.

 
샤넬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샤넬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피렌체 넵튠 분수 복원을 지원하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피렌체 넵튠 분수 복원을 지원하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의 수상 작품.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의 수상 작품.

 
최근 발생한 화재로 불탄 노트르담 성당.

최근 발생한 화재로 불탄 노트르담 성당.

 
서로 천생연분처럼 어울리면서도 이따금씩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패션과 예술 분야. 이들의 관계는 오랜 시간 우정을 이어온 ‘베스트 프렌즈’처럼 무척 끈끈하고 내밀함과 동시에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분석해 보면 순수한 애정에 기반한 관계라기보다 서로의 장점을 돋보이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이익을 챙기는 이해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느냐가 꽤 민감한 주제로 다뤄지면서 때때로 불편한 시선을 감수했었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솔직하게 ‘오픈’되고 공유되는 시대에 이런 논쟁은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단발적인 한때의 이슈를 모으기 위해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의구심이 앞서기도 한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컬렉션의 단점을 숨기기 위해 아티스트의 비주얼을 거리낌 없이 내세우거나, 패션의 상업적 특성에 편승한 일부 예술가들을 보고 있으면 지독히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부자연스러운 애정 행각을 보는 듯하니까. 그러나 긴 세월을 거쳐 비로소 돈독해진 이들의 관계는 현재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동시에,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진실된 상생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청담동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하우스의 ‘첫’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으로 화제를 모았다.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진중하고 모던한 외관으로 들어서면 샤넬의 모든 컬렉션이 잘 정돈된 갤러리처럼 준비돼 있는데, 놀라운 점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스토어 곳곳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부티크답게 이불, 강익준, 이우환 등 저명한 국내 작가의 작품부터 앤서니 피어슨, 아그네스 마틴, 파블로 레이노소의 작품과 각종 리빙 디자인 제품이 마치 오랫동안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이 거대한 공간이 방문객에게 위압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적재적소에 자리한 이 다감한 예술 작품 덕분이 아닐까. 브랜드의 아카이브와 아이덴티티에 충실히 부합하는 아트 피스들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패션과 예술이 가장 동시대적으로 ‘윈윈’하는 성공적인 사례임을 보여준다. 지극히 상업적인 패션 하우스면서도 패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예술가들의 행보를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대표 하우스가 바로 조너선 앤더슨이 이끄는 로에베다. 조너선 앤더슨에게 로에베는 트렌드를 사고파는 패션 브랜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면밀히 연구하는 가운데 로에베를 규정하는 키워드 중 ‘공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170여 년의 역사를 가능케 한 동력은 최고급 소재를 섬세하게 다루는 정교한 장인 정신에 있기에 눈 녹듯 사라지는 1차원적 트렌드는 그의 마음에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로에베의 본질은 공예이고 이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공예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우스의 모더니티를 새롭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포부는 올해로 세 번째 맞이하는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00여 개 국가에서 선발된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출신 국가와 경력, 나이와 관계없이 다채로운 결과물로 구성돼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도자기와 섬유공예, 금속공예 작품 등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깐깐한 선별 과정을 거쳐 지명된 최종 후보자들의 전시회 역시 하우스를 대표하는 연례 행사로 많은 관심을 모은다.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우위를 점하거나 경쟁 구도를 내세운 ‘버라이어티 쇼’를 연출하지 않는다. 공예라는 본질에 충실한 이들이 모여 진중한 의견을 나누는 고결하고 진실된 자리에 가까워 보인다. 로에베 고객과 잠재적인 소비자들은 패션과 아트의 이런 행보를 통해 마음을 열게 된다. 이처럼 브랜드의 초석을 새롭게 다지고 그 가치를 재확장하는 도구로 아트 프로젝트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브랜드가 설립한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기획전을 통해 대중에게 예술적 창조력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공급하는 루이 비통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거대 패션 하우스의 이름을 걸고 선보이는 유명 아티스트의 기획전은 예술에 표하는 일종의 경의이자 선언이며, 하우스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가장 탁월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건강한 상생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미술관에 자리 잡은 아트 피스 외에도 전 세계에 포진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패션 브랜드는 보다 이타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파리의 심장부이자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이 불길에 휩싸여 전 세계인이 슬픔에 빠졌을 때, 복원을 위해 먼저 거액의 지원금을 내놓은 그룹 역시 케어링과 LVMH였다. 이미 오래전 펜디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 복원을 지원했고, 콜로세움 복구 작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후원하고 있는 토즈는 물론 캄피돌리오 광장 일부를 위해 힘쓰는 구찌, 피렌체 넵튠 분수 복원에 앞선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 문화유산 보호에 앞장서는 하우스의 발자취는 패션과 예술이 서로를 어루만지며 공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서로 동태를 살폈던 세월을 지나, 패션과 예술의 관계는 현재에 이르러 보다 투명하고 명확하며 견고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게 됐다. 편견을 뒤로한 채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패션과 예술의 미래 그리고 그 ‘케미’가 더욱 긍정적인 양상으로 불붙기를 기대해 본다.

Credit

  • 에디터 김미강
  • 사진 COURTESY OF CHANELLOEWE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