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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광덕사에 대해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375 작성일2012.04.10
 안녕하세요 \^+^ / 초 4 여아입니다.. 제가 숙제로 현장답사를 부모님과

가야하는데 엄마가 내일 아침에 간다구 광덕사('寺' 절입니다..)앞에서

사진 좀 찍구 내려와서 광덕사 조사한다음 인쇄해서 학교에서 사회시간에

참고해서 보고서를 만들어라~ 이러셨거든요.. 그래서 광덕사 조사를

해야하는데요 자세한 정보가 안나와서유.. ㅡ..ㅡ; 광덕사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그리구 광덕산 조금 올라가다보면 절 나온다던데 거기에요. (寺 한자 '절 사'자)

언제 만들어졌나,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나 등.. 여러가지 정보 부탁드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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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
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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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는 652년(진덕여왕 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에 광덕사에 대한 설명 및 광덕사에 있는 문화재를 올려드립니다.

 

광덕사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마곡사는 그 산너머 남쪽에 자리한다. 652년(진덕여왕 6)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 《화엄경》 《법화경》 《은중경》 각 2부 등을 승려 진산(珍山)에게 주어 새 도량(道場)을 연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곳에 거동하였을 때 한계희에게 명하여 전지를 써 내렸는데, 위전를 바치고 각종 요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28방에 부속암자가 약 89개, 9개의금당, 80칸의 만장각, 3층으로 된 천불전은 불교도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번창하여, 경기 ·충청 일대는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는 대찰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가까스로 대웅전 ·천불전만 중건되어 큰 절의 명맥만을 유지하였고, 1981년 대웅전 ·천불전 등을 신 ·증축하였다. 광덕사 고려사경인 보물 제390호 《금은자 법화경》(6책)과, 천불전의 대형 후불탱화 3점, 《금자사적기》 《세조어첩》 등 문화재가 있다.


그런데 1680년(숙종 6)에 안명로가 쓴 이 《사적기》는, 이 절의 개창을 신라 흥덕왕 7년(832)으로 적고 있는데, 자장을 흥덕왕 때 사람으로 착각한 듯하다. 또 《태종실록》(28권)에 따르면, 1414년(태종 14) 가을에 왕명으로 《대반야경》(전부)을 일본의 승려 규도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덕사에 있는 문화재)

 

1.천안 광덕사 감역교지


종 목  보물  제1246호 
지 정 일 1997.06.12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30 (광덕리)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세조 3년(1457) 8월 10일에 왕이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광덕사와 개천사에 내린 교지이다.


이것은 두 사찰의 잡역을 경감하라는 내용이며, 체제와 형식에 있어서 예천 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 능성 쌍봉사교지(보물 제1009호)와 같으며, 대상 사찰명과 발급일자가 다를 뿐이다. 단, 쌍봉사에 발급한 교지와는 날짜까지도 같다.


이 문서는 국왕이 직접 내린 것으로 조선 전기 사패교지의 형식을 알려주는 자료이며, 세조 때의 불교정책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2.천안 광덕사 조선사경


종 목  보물  제1247호  
지 정 일 1997.06.12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30 (광덕리) 
시 대 조선시대


충남 천안 광덕사에 전해지는 사경(寫經)이다. 사경이란 불경의 내용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꾸민 것을 말한다.


백지에 먹으로 쓴 ‘부모은중경’과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공양하며 경전을 읽고 외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른 경전과 달리 각 내용에 따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부처의 힘을 빌리거나 수행을 통해 모든 죄악을 없애고 장수하는 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부모은중경의 끝에 남은 기록을 통해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1396∼1486)이 부인·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만든 책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불교 진흥에 큰 역할을 했던 효령대군의 불교신앙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불교 문화사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3.광덕사 노사나불괘불탱


종 목  보물  제1261호 
지 정 일 1997.08.08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광덕사 
시 대 조선시대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법당 앞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화를 말하며, 광덕사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머리에 보관을 쓴 노사나불을 다른 형상보다 크게 그려 중앙에 배치하고 주위에 2대보살·2대제자·사천왕을 그려 넣은 모습이다. 본존은 타원형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둥근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7구를 표현하였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고 양 손은 어깨 높이 정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붉은색의 옷과 매듭, 옷깃의 둥근 모양 장식 등이 어우러져 화려함이 돋보인다. 주변의 인물은 좌우대칭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깨 부분의 양쪽에는 2대 제자가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2대보살이 있으며 둘레에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배경에는 군데군데 구름을 그려 넣어 밝고 선명한 채색과 더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4.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제398호 
면 적 7,506㎡(보호구역)
지 정 일 1998.12.23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30 (광덕리)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도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5.광덕사 부도


종 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지 정 일 1978.12.30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시 대 조선시대


절 주변에 호도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 자장이 창건하였다. 절내의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산기슭에 4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각각 청상당 부도, 적조당 부도, 우암당 부도, 무명 부도라 일컫는다.

 

청상당 부도는 청상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스님은 조선 선조 36년(1603)에 출생하여 현종 12년(1671) 은적사에서 입적하였는데 그 제자들이 스님의 사리를 얻어와 이곳 광덕사에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형태는 전체가 거의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뉜다. 연꽃무늬가 펼쳐진 아래받침돌 위에 6각의 가운데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각 면에 난간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둥근 모습이고, 그 위로 6각의 지붕돌이 놓여 있다. 꼭대기에는 화려한 머리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광덕사『사적기』에 따르면, 조선 현종 13년(1672) 경에 이 부도를 세웠다 한다.

 

적조당 부도는 전체가 8각을 이루어,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아래와 윗받침돌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그 사이 8각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마다 난간을 새겼고 한쪽면에 ‘적조당’이라는 글씨를 새겨 사리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탑신의 몸돌은 둥글고, 6각 지붕돌 꼭대기에는 보륜(바퀴모양의 장식)과 보주(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소박한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우암당 부도의 기단부는 둥근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받침 ·윗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무늬는 두지 않고, 다만 ‘우암당’이라 새긴 글씨만 있을 뿐이다. 탑신은 타원형의 몸돌과 6각 지붕돌이 있고 그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무명 부도는 연꽃무늬를 새긴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리고 세 줄의 연꽃잎을 새긴 윗받침돌을 얹어 기단을 마련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8면마다 신장상(神將像: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을 1구씩 돋을새김 하였는데, 그 수법이 대담하고 우수하다. 탑신은 종모양을 하고 있어서 둥글고 길쭉하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광덕사『사적기』의 기록이나, 전체적인 형태, 둥근 탑신의 모습 등으로 보아 모두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6.광덕사 삼층석탑


종 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지 정 일 1985.07.19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시 대 고려시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7.광덕사 대웅전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시 대  근대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다.  


8.광덕사 천불전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38 
시 대  근대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대웅전과 천불전을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있는 천불전은 옛 건물을 1975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목조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존자를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왼손가락끝으로 오른손가락을 덮어 누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 불상 뒤로는 천불이 그려진 탱화 3점이 걸려 있었다. 이 탱화는 광덕사의 사적기가 제작된 조선 숙종6년(1680) 당시에도 오래된 듯 보여 그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1999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다. 


9.광덕사 석사자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2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시 대  미상


광덕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 놓여 있는 2기의 돌사자상이다.

 

받침돌을 따로 두지 않고 한돌로 조각하였는데, 하늘을 바라 보는 얼굴은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으며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털은 구름무늬를 이루고 있고, 입은 약간 벌린 모습으로, 그 안에 이빨도 표현하였는데, 사실성은 떨어진다. 

 

 

10.광덕사 부도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산175-1 
시 대  통일신라시대


광덕사 뒷편의 작은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진산화상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진산화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흥덕왕 대에 이 절을 새로이 고쳐지었다.

 

탑은 종 모양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낮은 바닥돌 위로 4각 기단을 마련하여 종 모양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에는 ‘진산화상’이라는 글귀를 새겨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꼭대기에는 탑신과 한돌로 이루어진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솟아나 있다.

 

각 부분에 특별한 꾸밈을 두지 않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다.

20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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