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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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데요.
김수로왕 말고도 김해김시 시조가 있는것 같아요.
아래 내용을 참고해 보세요^^
# 김해김씨가 가락이랑 우륵이랑 법흥으로 나눠어져 있는데
가락의 시조는 김수로왕이구요
우륵의 시조는 김충선이구요
법흥의 시조는 김염이라고 합니다.
# 김해김씨(金海金氏)[가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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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金海金氏)[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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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김씨는 크게 가야 수로계 김해 김씨, 신라 알지계 김해 김씨, 일본계 김해 김씨로 나눈다. 일본계 김씨는 임진왜란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 김충선(사야가)을 시조로하는 사성 김해 김씨가 있는데 김해 김씨 사성파 또는 우록 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충선과 함께 귀화한 김성인(사여모)도 본관을 김해로 하였다가 최근에 함박 김씨로 본관 이름을 바뀌었다.
김해 김씨는 가야 수로계을 선김(先金), 신라 알지계을 후김(後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후김의 시조는 경순왕 3남 김렴, 중시조는 그의 후손 김시흥으로 최초 본관은 김녕이었는데 고려말 지역통합으로 본관이 김해로 바뀌었다가 조선말 왕명으로 본관을 김녕으로 복원하였지만 여전히 (후) 김해김씨 익화파(益和派), 종남파(從南派), 법흥파(法興派), 종민파(宗敏派)등은 본관을 김해로 하고 있다. (후) 김해김씨 법흥파는 기존 후김, 김녕 김씨와도 구별된다. 법흥파 1세조 김춘(金春)은 김시흥의 8대손으로 그의 8촌 김문기가 사육신과 관련하여 화을 당하자 황해도 풍천으로 피신했다가 1471년 평안도 용천군 동하면 법흥동으로 세거지를 옮겼다. 후손들이 그를 김춘을 1세조로 하고 김해 김씨 법흥파 또는 법흥 김씨라고 하였다.
김해라는 지명은 통일 신라 말기(756년)에 생겨난 지명으로, 처음 김해을 본관으로 하였던 성본은 고려 말기 지역 통합으로 김녕 김씨에서 김해 김씨로 개칭한 신라계 김해 김씨(후김, 後金)이다. 가야계 김해 김씨(선김, 先金)의 원래 본관 이름은 가락 김씨였는데, 가락은 특정 지역명이 아니므로 조선 시대에 본관 이름을 가락 김씨의 발원지인 김해로 개칭하였다. 이후 신라계 김해 김씨(후김, 後金)와 혼선이 빚어져 후김(後金)의 본관을 김녕으로 복원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김해라는 본관을 먼저 사용한것은 후김(後金)이었기 때문에, 후김(後金)의 일부는 본관을 김해로 하고 있다.
김해 김씨는 가야 설화에 등장하는 수로왕에 연원을 두고 김유신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김해 김씨는 인구가 많은 성씨로 2000년 조사에 따르면 400만명이 보고 되었다고 한다. 주요 인물로는 김유신, 김홍도, 김기창, 정치인 김대중, 김종필, 국회의원 김유정, 김형오, 김종률, 김무성, 배우 김명민, 김수미, 가수 김장훈, 김태우, 개그맨 김현철 김신영, 아나운서 김성주, 김보민등이 있다.
법흥 김씨의 시조 김춘은 김녕 김씨, 또는 후김의 시조 김시흥의 8대손이다. 김춘은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8촌 동생으로, 김문기가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가문이 멸문하는 화을 당하게 되자, 당시 김해 군수 김춘은 황해도 풍천으로 피신하여 1471년(성종 2년)에 평안도 용천군 동하면 법흥동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김춘(金春)을 입향 1세조로 하고 본관을 법흥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춘의 묘소는 실전되고 평북 용천군 동상면 덕향산에 제향하였으나 남북이 분단되어 근황을 알 수 없다.
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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