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경기도 광주시의 대해서 알려주세요
고구마마탕 조회수 8,343 작성일2014.05.23

광주시의 탄생과 변화

1위치

2역사

3인구

4자랑거리

5많은 사람들이 경기도의 대해 궁금해 하는 점이 뭐예요?

 

 

 

 

 

내공 100

내공 냠냠 꺼져

 

5분 내로 해주삼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lt****
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본인 입력 포함 정보

광주시의 탄생과 변화

 

1위치

 

경기도 중남부의 동경 127。21′∼127。64′, 북위 37。15′∼37。33′에 위치한다.


광주시의 동쪽은 여주시, 서쪽은 성남시, 남쪽은 용인시·이천시, 북쪽은 하남시와 한강을 경계로 남양주시와 접하고 있다.


 

 

2역사

 

고대


1986년 중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광주 궁평리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견된 이후, 각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가 실시되면서 구석기 유적지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한강변에 위치한 남종면의 검천리, 오포면의 양벌리 등이 있으며,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취락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보다 분포 범위가 넓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상평동·궁평동·쌍동리 등에서 지석묘와 주거지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신석기시대에 이어 청동기시대에도 광주지역에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였음을 보여준다. 삼한시대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마한이 지금의 군청소재지인 경안에 도읍을 정하여 광주의 별호를 회안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약 500여 년 동안 도읍을 하였던 곳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였다. 이곳은 오늘날 서울시 송파구에 속해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광주지역에 속해 있었다. 한강유역에 도읍했던 백제는 국력이 날로 신장해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와 싸워 고국원왕을 전사시킬 정도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나 475년(문주왕 1)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개로왕이 피살되고 백제는 공주로 천도했으며, 이후 76년 동안 광주지역은 고구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유적과 몽촌토성에서 발견되는 고구려 토기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551년 광주지역은 백제·신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탈환되어 잠시 백제의 영역에 속했지만, 553년(진흥왕 14) 나제동맹을 파기한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에는 신주로 되었다가 660년(태조무열왕 7)에 한산주로, 다시 756년(경덕왕 15)에 한주로 개칭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지역만큼 넓었던 신주와 한산주·한주의 읍치지역으로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에 한주는 현재의 이름인 광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을 12도로 나눌 때 광주목을 두어 관내도를 다스리게 하였다. 995년(성종 14)에 12절도사를 둘 때 봉국군절도사로 고쳐 관내도를 예속시켰다. 1012년(현종 3) 절도사를 폐하고 안무사를 두었다가, 1018년 12목을 줄여 8목으로 고칠 때도 광주는 목사를 그대로 두었다.


조선시대


세종 때 진을 두어 광주목 진영소속으로 여주목·이천도호부·양근군과 지평·음죽·양지·죽산·과천의 5현을 두었다. 1566년(명종 21) 방어사와 토포사를 겸하였고 1577년(선조 10) 부(府)로 승격되어 방어사를 겸하였고 1592년의 임진왜란 때는 수어부사를 겸하였다.


1623년(인조 1) 남한산성을 쌓고 주치를 옮긴 뒤 1630년 광주부윤으로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옮겨져 45일간 항쟁의 격전을 치러 국난극복의 보루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세종 때의 상신인 맹사성, 세조 때의 대신이며 학자인 최항, 임진왜란 때의 명장 신립 등이 있으며, 묘가 모두 군내에 있다. 또한 실학자 안정복도 이곳 출신이다.


근대


1895년(고종 32)에 다시 광주군으로 되었으며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이 대왕면에 쓰여진 뒤로는 광릉으로 별칭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강과 경안천의 수로를 통한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사옹원 분원이 설치되어 분원백자의 산지로 유명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백자 요지만도 85개 소에 달하고 있다.


1917년에는 군청이 남한산성에서 경안리로 이전되었고, 1919년 3월 23일 이후 군내 각지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26일에는 중대면·동부면에서, 27일에는 서부면에서, 28일에는 돌마면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있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역대의 시가를 모아 『가곡원류』를 편찬한 안민영, 신소설 『추월색』을 발표하여 신문학 개척에 공이 큰 최찬식,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으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이종훈, 개화기의 선각자 유길준, 근대의 정치가였던 신익희 등이 있다.


현대


1963년에 구천면·중대면·언주면과 대왕면의 일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고, 1964년중부면 성남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 성남시가 신설되면서 중부면 일부와 대왕면·낙생면·돌마면이 이 시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에 광주면이 읍으로, 1980년 12월 1일에 동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동부읍·서부면 및 중부면 산산곡리가 하남시로 승격, 분리되어 군세가 일시 약해졌으나 수도권 위성지역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2001년 3월 21일에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으며, 오포면도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 6월 21일에 초월면과 실촌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3인구 (2014년 4월 30일 현재)

 


 

 

4자랑거리

 

1)남한산성

 

종 목  사적  제57호 
면 적 528459.47㎡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 
시 대 조선시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2)광주 조선백자도요지

 

종 목 사적 제314호  

면 적 382,738㎡

지 정 일 1985.11.07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외 1읍 5개면

시 대 조선시대

 

도요지는 그릇이나 자기를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남종면·중부면·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에는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흙이 나오며, 나무와 물이 풍부하다. 제품의 공급지인 서울과 가깝고 한강을 이용한 운반의 편리성으로 인해, 조선 영조 28년(1752)궁중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으로 지정됐다. 그 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130여 년 동안 285개소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 사정이 어려워지자, 분원리 가마터는 개인에게 경영권을 주게 되었다. 그 후 여러 계층의 수요와 요구에 따라 자기의 모양과 무늬가 다양해졌으며, 청화백자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가마터의 구조는 오름가마이며, 계단식가마도 확인되었다. 여러 모양과 무늬를 새긴 자기들이 출토되었고,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를 통해 제작시기도 알 수 있다.

 

이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매우 가치있는 곳이다.

 

3)팔당호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남종면

 

팔당호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에 걸쳐있는 인공호수로 1973년 팔당댐 완공 이후, 약 2억 5천만톤의 물을 저수하고 있다.

 

팔당호에는 서울ㆍ경기지역에 수도물을 공급하는 취수장이 있으며, 호반 주변일대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경관이 빼어나 팔당댐을 중심으로 광주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특히, 팔당호를 따라 나있는 도로는 드라이브코스로 좋다.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팔당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팔당호의 멋진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4)스파그린랜드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스파그린랜드 

 

수도권 최고의 청정지역 퇴촌에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노천에서 까운을 입고 족탕은 한다는 것 그 자체만 하더라도 최고의 웰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스파그린랜드에는 헬스케어에서 정원족탕으로 바로 나가게 되어 있고, 따듯한 온수가 흐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게 되면 먼저 보행족탕에서 가볍게 보행을 하면서 족욕을 한후 계곡족탕과 휴게족탕을 따라 이용하게 되어 있다.

 

가족, 연인 등 남여노소가 부담없이 족탕을 할수 있도록 되어있는 국내 유일한 족탕(풋스파) 시설이다.

 

스파그린랜드내에는 다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한 다목적 스파홀이 있는데 이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단체고객에게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홀로 이곳에서는 동남아, 일본 관광객의 편의도모와 고성능의 빔프로젝트 및 스크린과 음향설비를 설치하여 세미나 또는 연수, 발표회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고 단체객이 방문하게 될 경우 건강하고 효율적인 스파욕이 되도록 시설이용법과 건강입욕요법도 지도해 주는 동시에 정기적으로도 건강 스파요법도 강의할 예정이다.

 

스파그린랜드를 “작은 미술관”이라고 부르는데 탕내부, 노천탕, 현관, 로비, 식당 등 스파 그랜랜드의 구석구석에는 세계적인 명화 및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어, 스파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물놀이의 즐거움과 함께 정서함양 등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스파그린랜드에 방문하면 청정 자연환경에 물을 통한 건강증진과 즐거움, 그리고 조각과 예술작품을 통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일거삼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5)율봄식물원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102-3

 

율봄식물원은 꿈같이 펼쳐진 팔당 호반에 인접한 2만여 평의 청정지역에 주제별 자연예술테마가 마련되어 있어 넉넉한 휴식과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쾌적한 농촌 환경 속에서 자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감상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율봄식물원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휴식'과 '배움'과 '즐거움'과 '예술'이 자연 속에 살아있는 농원이다. 율봄은 돌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농원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가꿔진 정원이 아닌 자연스럽고 한가로움이 묻어나는, 누구나 쉽게 머물다 갈 수 있는 편안한 쉼터이다.

 

6)곤지암리조트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웅리 산 23-1번지


곤지암리조트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에서 4Km 거리에 위치해 서울 강남에서 불과 40분만에 도착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수도권 최대규모인 스키장과 476실의 콘도미니엄, 스파와 수목원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 프리미엄 리조트이다.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미국), The Palace of the Lost City(남아공), 제주 롯데호텔 등 리조트 디자인 분야에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는 WAT&G(Wimberly Allison Tong & Goo)가 설계한 곤지암리조트는 북미 스타일의 이국적이고 차별화된 분위기의 리조트이다.

 

리조트 단지를 관통하는 생태하천을 따라 꾸며진 생태하천과 리조트 중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약 9만병을 저장할 수 있는 동굴와인셀러에서 경험하는 다채로운 와인이야기 그리고 자연을 경혐하기 힘든 현대인을 위한 약 16만평방미터(5만평) 규모의 수목원, 기존의 리조트 스파와는 달리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데스티네이션 스파과 퍼블릭한 워터존을 통해 국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7)침괘정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72.05.04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591-1

시 대 조선시대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영조 27년(1751)광주유수 이기진이 다시 지은 후에 침괘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백제 온조왕의 궁궐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침괘정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보관하던 무기고나 무기를 만들던 무기제작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안쪽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고, 현 건물구조로 볼 때 근처에 있었던 무기고나 무기제작소의 집무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8)분원백자관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116번지

 

조선왕조는 400년간 왕실용 자기를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을 광주일원에 설치하고 왕실이 직접 경영하면서 훌륭한 도자기들을 많이 생산했다. 2003년 개관한 분원 자관이 위치한 폐교 터는 1752년 조선의 마지막 관요가 설치되었다가 1884년 민영화 된 곳이다.

 

당시 분원리에서는 왕실과 관청용 백자는 물론 사대부나 민간의 요구를 반영하는 그릇들까지 제작되어 상인물주들을 통해 유통되었으며, 분원 백자관은 조선시대 관영사기의 변천과, 도자기 역사의 발자취를 한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산교육의 장으로 이웃한 조선관요박물관과 상번천도요지와 연계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선 도자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9)경안천 습지생태공원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정지리 생태공원은 팔당호 상수원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기존 자원인 갈대, 부들 등의 수변식물을 이용해 수질을 개선해 주변 동,식물 등의 서식처 제공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적인 공원으로 조성, 도시민에게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또 탐방로를 비롯해 어류서식처, 조류관찰대 등 자연을 직접 체험하여 느낄 수 있는 학습장으로 주말을 맞은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유익한 즐거움을 얻기에 충분하다. 특히 7~8월경에 개화되는 연꽃은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습지공원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10)장경사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정리 22-1

 

남한산성 안에는 본래 9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현재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국청사 등이 복원되었고 나머지는 소실되었다. 장경사는 남한산성 동문에서 북쪽으로 2km 가량 올라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근교 사찰로는 드물게 한적하여 깊은 산사의 맛을 느낄 수 있다.

2014.05.23.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직접정리 + 광주시청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